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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6 21:21 (화)
"의사 선생님 아니야"
"의사 선생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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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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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진(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주무이사 겸 대변인)

"의사 선생님 아니야"

애기엄마가 예진실로 들어오면서 우는 애를 달래느라 하는 말이다. 나가면서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거봐, 아무것도 안 하잖아"

그런데 그 말이 가슴깊이 비수로 돌아와 꽂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자괴감인 듯 하다.

나는 보건소 예방접종실에서 근무한다. 하루에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씩 접종실 예진을 보다보니 기본적인 진료나 히스토리 테이킹은 상상도 못하고 형식적인 문진과 서명만 한다.

게다가 곧 다가올 계절 독감 접종 시즌에는 하루에 천명 이상씩의 사람들이 보건소 주위를 뱀이 또아리 감듯 긴 줄을 서 장사진을 이룬다. 이 역시 나 홀로 예진하고 접종 오더를 내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진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기 엄마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예진 후 접종표에 서명을 해주면 혹여 다른 말이라도 할까 싶어 접종표를 빼앗듯 낚아채어 문밖으로 나간다. 혹여나 열 등의 콘트라 인디케이션으로 다음번에 접종할 것을 권유라도 하는 날이면 십원짜리 욕을 듣기 일쑤다.

자기들이 애기를 힘들게 안고 온 것과 택시비 날리는 것이 아까워 무조건 그냥 놔달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한다. 여기서 나의 의학적 판단은 존중은커녕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순조로운 접종을 막는 방해꾼으로 전락한다. 말 그대로 'anti-acting'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진료인가.

물론 환자들에게 존경을 받겠다거나 권위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을 하기 싫어서도 아니다.

다만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받아들이게 할 만한 최소한의 귄위는 세워질 수 있는 진료 환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 보건소는 아니 이 나라는 공공의료라는 '거룩한' 정책을 아주 헐값으로 국민에게 제공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신종플루도, 백신 접종도, 이동 방문 진료도 다 하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든 되지 않든 민원만 안 생기게 좋게좋게 보내길 바란다. 의사는 (최소 공보의는)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땜빵질 해주는 아주 다루기 손쉬운 인력인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최선의 진료는 그 어디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행정부 내에서의 보건복지가족부의 위치와 의료에 들이는 우리나라 예산의 규모만 봐도 국가가 의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정말 국민에게 좋은 의료를 제공하고 싶다면 적정한 댓가로 실력 있는 의사선생님들을 보건소로 많이 모셔 와야 되지 않을까?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이다. 국가가 의료를 '싸구려'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싸구려' 진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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