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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누구를 위한 잔치였나

추석, 누구를 위한 잔치였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0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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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애경(서울 강서·WE클리닉)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있다. 민속 대 명절 한가위. 과거에 비해 생활이 바쁘고 핵가족화로 가족의 개념이 조금 변해가는 현대인에게 추석이 예전만큼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하지만, 분명 추수감사절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우리의 명절이다.

해마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으면 전에 없던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많아진다. 머리가 아프고, 어깨가 시리고, 소화도 안 되며, 속이 갑갑하고 몸이 좋지 않다 등 다양한 증상이긴 하지만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보면 명절을 앞둔 주부들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화를 불러 비롯된 증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평소에 잘 만들지 않던 음식들을 대량으로 장만해야 하는 주부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직장일과 집안일로 정신없는 일상에 지쳐있던 며느리도 명절이 다가오면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손님들이 왔는데 음식이 소홀해 보이지 않을까, 집안이 지저분한데 남들이 뭐라 하지나 않을까, 차례 비용은 얼마나 들까, 일 못한다고 시어머니에게 핀잔이나 듣지 않을까, 친정집에는 갈 수 있을까, 자식들 오는 길은 막히지나 않을까 등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깨가 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잠이 시원하게 올 리 없고 소화가 잘 될리 만무하다.

갈수록 자리가 좁아지고 목소리에 힘을 잃어가는 우리네 남자들은 또 어떠한가. 명절 앞두고 차례 준비며 가족들 모임 비용과 부모님 용돈, 자식 손주들 선물 비용 등 돈 나갈 곳은 한 두 곳이 아닌데, 이런 심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게다가 명절 전부터 신경이 날카로운 마누라 눈치보느라 숨 한 번 크게 쉬는 일이 쉽지 않다.

다른 가족들은 또 어떤가? 노처녀 딸 아이는 언제 시집가느냐는 친지들의 걱정이 한마디씩 보태져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 신혼부부에게는 2세 소식에 대해 한마디씩 물어보는 질문이 스트레스가 되니, 명절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재수생에게는 힘내라는 말에도 한숨이 나올 뿐.

뉘집 아들은 차를 사줬다더라, 뉘집 부모는 집을 마련해줬다더라, 하는 대화를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꼭 했어야 할까?  잔치가 끝나고나면 가족 구성원들 모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다음 번에 모이는 날에는 가기도 전에 어깨부터 아픈데,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명절일까? 풍요롭고 풍성하게 사람 사는 맛을 느끼고 조상의 뜻을 기리며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하던 우리의 명절인데.

원칙과 제도는 철저히 지키지 못하더라도 명절의 좋은 의미와 근본을 잘 이어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간소한 상차림을 보편화하고 손이 많이 가는 전이나 나물의 숫자는 간략히 하되, 형편이 어려우면 식혜나 수정과, 약밥, 송편 등을 사 먹더라도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움이 배가 되야 한다.

오랜 만에 모인 가족에게 기왕이면 들어서 좋지 않은 소리는 다음 기회에 하고 기분 좋을 말만 서로에게 해주는 것은 어떨지. 점점 목소리마저 약해지는 남성들의 기를 너무 죽이지 말 것이며, 또한 남녀 차별 없이 모두 즐겁게 동참하여 일하는 것은 또 얼마나 즐거울지.

이번 명절이 피곤하고 지친 날들이었다면, 가족에게 내가 서운하게 한 일은 없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다음번 명절만큼은 과도한 명절 준비로 미리 스트레스 받지 말고,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배려하여 한마디를 하더라도 사랑을 담아보자.

전통이나 규칙 보다는 그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모두 행복하고 풍요로운 그런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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