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20:40 (토)
coverstory 배달사고? 흉부외과 100% 수가인상분 어디로…

coverstory 배달사고? 흉부외과 100% 수가인상분 어디로…

  • 이석영 기자
    이현식 기자 lsy@kma.org
  • 승인 2009.09.25 10:54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지 취재 결과 전국 주요 수련병원 11곳 중 9곳 아직 사용용도 못정해
안홍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간사 "수익인상분 제대로 사용되는지 계속 주시해야"

Cover Story

단순히 행정적인 지연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꾸물거림일까. 전국 수련병원 곳곳에서 기묘한 '배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전공의 선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과와 흉부외과의 인력 충원을 위해 지난 7월 1일부터 수가를 각각 30%와 100% 인상했으나, 이 돈이 해당 과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본지가 21~23일 주요 수련병원 11곳의 흉부외과 수가인상 후속대책 현황을 취재한 결과 무려 9곳이 아직 수가인상분의 사용 용도조차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건현 대한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은 "일부 수가인상분을 반영해주는 병원도 있지만 80~90%는 아직 어떻게 사용할지 못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원무팀 관계자는 "진료비를 청구하면 보통 한 달 안에 70~80%가 입금되고 두 달이 지나면 90% 정도 건강보험공단에서 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수가가 인상된 지 만 3개월이 다 돼가는 이 시점에 추가수익 대부분이 갈 곳을 잃은 채 병원 통장에서 잠자고 있는 셈이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등 메이저급 대학병원들은 아직 수가인상분 사용용도를 확정하지 못했다<표>.

이와 관련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간사)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공의 지원 기피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실시된 '외과 및 흉부외과 수가 인상'의 혜택이 실제 해당 과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수익 보전에 그친다면 전공의 지원 기피현상은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또 "외과 수가인상분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계속 주시해야 하고,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가 반감되지 않도록 복지부가 철저한 사후관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신문·대전협 실태조사 나선다

좌훈정 의협신문 편집인(의협 공보이사)은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공동으로 앞으로 외과·흉부외과 수익인상분이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원용 대전협 회장은 "현재 내부적으로 전공의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중"이라며 "아직 제도 시행 초기라는 점을 고려해 약간의 적응기간이 경과한 이후 실제 해당 과 전공의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앞으로 수가인상분이 본래 취지대로 사용되는지 철저히 파악해 그 결과를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조건현 학회 이사장은 "의협신문 등 언론에서 수련병원의 실태를 공개해주면 문제 해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례1: 전북대병원 "2명 지원할 듯…수가인상 효과"

전북대병원은 흉부외과 수가인상분으로 전공의 월급을 더 주기로 결정했다. 이 병원 구자홍 교수는 "전공의 본봉의 100%를 추가 지급하고 7월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며 "올해 2명 정도 지원할 걸로 알고 있는데 수가인상 효과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병원 흉부외과는 지난해엔 지원자가 없었고, 현재 4년차와 2년차 전공의가 각각 한 명씩 있다. 구 교수는 "용도가 지정돼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해 다른 과 선생님들도 별 말씀을 안 한다"며 "원래 취지와 다르게 쓰면 정부가 계속 지원해주겠냐"고 반문했다.

고려대의료원의 경우 수가인상분 전액을 해당 과에 쓰기로 했다. 전공의에게는 국공립병원 수련보조수당 지원금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50만원을 추가 지급하고 나머지 재원은 의국비 형태로 과 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현재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을 통틀어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3년차 여성 전공의 딱 한 명이다. 이 전공의는 이번 달에 7월분 수당부터 소급 적용을 받아 150만원을 더 받는다.

선 경 고대의료원 의무기획처장은 "22일 최종 결정이 나와서 의료원 산하 병원장들에게 공문이 내려갔다"며 "일부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흉부외과 교수들의 월급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의국비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니까 설득이 됐다"고 말했다.

선 처장은 "제 자신이 흉부외과 교수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다른 흉부외과 선생님들도 말을 많이 아꼈다"고 전했다.

병원장 등 주요 보직자가 외과계열 교수라고 일이 쉽게 풀리는 것도 아니다. 전남대병원의 경우를 보면 이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의 원장은 외과 교수이고, 직전 원장은 흉부외과 교수다.

병원장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료처장과 기조실장에게 맡겼는데, 흉부외과 교수들과 진료처장 사이에 이견이 큰 상태다. 이 병원 나국주 흉부외과 교수는 "인턴들에게 물어보니 정형외과나 안과보다 월급이 200만원 정도는 더 많아야 지원하겠다고 했다"며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50만원 정도만 인상할 계획이어서 계속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 김광택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과장<왼쪽>이 24일 이은주 전공의<3년차>와 외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은주 전공의는 현재 고려대의료원 산하 3개병원 통틀어 유일한 흉부외과 레지던트다. 김선경 기자 photo@kma.org

서울대병원 김기봉 흉부외과 과장은 "기획실과 협의 중인 상태"라며 "수가인상분 전액이 원칙적으로 흉부외과를 위해 쓰여야 하고 혜택이 7월부터 소급 적용돼야 한다는 안을 올렸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정경영 흉부외과 과장도 "7월부터 병원에 건의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 했다.

부산대병원 정성운 흉부외과 과장은 "구체적 수치보다는 수가인상분 전액을 흉부외과에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병원에 건의했다"며 "기획실장과 논의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많이 지원하는 인기과는 역시 경제적인 논리와 뗄 수 없는 것 같다"며 "최근 인기과로 부상한 영상의학과가 대표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김종진 대한흉부외과개원의협의회장은 "전공의 충원이 목적인 만큼 당연히 여기에 써야 할 돈인데도 그냥 놔두고 있는 게 염려스럽다"며 "전공의 처우 및 근무여건 개선에 적극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례2: 한 지방 국립대병원 교수의 고백

A대학병원의 8월 1일부터 23일까지의 진료비 청구액 중 흉부외과 수가인상분은 약 8000만원이다. 이대로라면 1년에 10억원 정도 추가수익이 생기는 셈이다.

이 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는 "동료의사 입장에서 만약 밤에 응급환자가 와서 콜한 경우 내과의사는 3만원 주고 흉부외과의사는 10만원 달라고 할 명분이 있겠느냐"며 "우리가 나서서 임금을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어 "힘들게 트레이닝을 시켰으면 잘 살게 해줘야 하는데 흉부외과는 그렇지 못하다"며 "아예 캐나다처럼 레지던트 수를 확 줄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의 취득 후 갈 수 있는 스탭자리 늘리고 개원 모델 개발해야

정경영 세브란스병원 과장은 '자리 확보'와 '비전 제시'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전공의들 월급은 대리운전 기사보다 못하다"며 "50~100만원이 아니라 지금 월급의 두 배를 줘도 안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들은 과의 비전을 보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들이 흉부외과를 기피하는 사유로 힘든 일을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대학에 남으려고 해도 스탭 자리가 거의 없다는 점, 개원이 어렵다는 점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과장은 전공의 지원을 늘리기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흉부외과 보드를 따고 지방병원에서 3년간 근무하면 방위산업체 종사자처럼 군역에 갈음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또 흉부외과 전문의도 로컬에 나갈 수 있도록 개원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민하는 병원장들 "지침이 없다?"

수가 인상분의 사용 용도를 결정할 권한은 병원장에게 있다. 그러나 본지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수련병원장들은 "수가인상분의 사용용도에 대해 위로부터 어떠한 공문이나 지침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결정을 못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었다.

이번 수가인상분의 취지가 외과·흉부외과의 처우개선 및 전공의 확보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잘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의 한 국공립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추가수익이 실제 병원에 들어왔건 아직 안 들어왔건 일단 기금이 만들어진 형식인데, 병원 수익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구워놓은 감자인데 먹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가인상분의 사용 용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6월 29일 수가 인상을 공지하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에 공문을 보내 추가 수익이 해당 과에 사용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대한흉부외과학회는 6월 17일, 대한외과학회는 9월 1일 회장과 이사장 명의로 전국 병원장들에게 수가인상분을 해당 과에 사용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과학회의 경우 '권장 요구사항'에 응답을 해온 대학병원은 한 곳도 없었다.

앞서 외과학회는 8월 28일 전국 외과 주임교수 및 과장 회의를 열고 권장 요구사항을 도출해 각 병원장들에게 전달했다. 외과학회는 추가 수입 재원의 70% 이상을 외과 의사에게 할당하고, 외과 전공의에게 최소한 월 100만원 이상을 급여 인상의 형식으로 7월부터 소급해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외과학회는 이 공문에서 수가인상에 따른 후속조치 관리를 위해 복지부·병협과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23일 현재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또한 복지부가 민간기관의 수익 배분에 대해서까지 관여하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이고, 병협은 병원장들의 단체인 만큼 실태조사에 소극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례3: "강원대병원 성공사례 배워라"

올해 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전체 흉부외과 수련병원 중 유일하게 강원대병원만 전공의를 받아 화제가 됐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32곳의 수련병원이 총 44명의 흉부외과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오직 2명이 지원했고 이들 모두 강원대병원을 선택한 것.

원래 1명을 모집한 강원대병원의 조성준 흉부외과 과장은 흉부외과학회의 승인을 받아 출신 모교인 고려대의료원에 도움을 청했고 정원 1명을 빌려 갔다.

선 경 고려의대 교수는 "선뜻 정원(TO)을 내주긴 했지만 왜 그 전공의들이 서울의 유수한 대학병원들을 놔두고 강원대병원을 선택했는지 과 차원에서 분석을 했다"며 "분명 강원대병원에 유인요소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고 폼만 잡을 게 아니라 성공사례로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수가인상은 외과 살리기 첫 단계…다양한 지원책 병행 필요

복지부가 이번 외과·흉부외과 수가인상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다시는 기피과 지원책으로 수가를 더 주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의료계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그러나 수가 인상은 전공의 지원율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시 말해 금전적 보상책 이외에도 인턴들이 흉부외과 전문의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에 흉부외과 지원책으로 국공립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수련보조수당 명목의 50만원을 얹어줬지만 지원자가 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외과를 살리기 위한 지원책은 장기적이고도 폭넓은 관점에서 뒷받침돼야 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