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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4 06:00 (수)
빛바랜 의사 엄마

빛바랜 의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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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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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규(서울 동작 연희산부인과 원장)

오늘도 어린 아들은 다리뼈 골절로 목발을 짚고 혼자 학교로 향했다. 미안한 마음은 뒤로한 채 '그래 너도 이런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봐야 한다'라고 뇌까리며 나름의 합리화로 아픈 가슴을 달래 본다.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의사가 되면 약간의 화려함은 보너스라 치고 최소한 남들보다 좀더 윤택하게 살 것이라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지만, 나날이 나빠지는 의료 환경 때문에 이제는 여느 직장 맘처럼 감당해야할 짐이 너무나 무겁다.

시간이 없으면 돈으로라도 해결해야겠다는 짧은 생각도 능력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요즘처럼 산부인과 의사가 3D업종으로 밀려난 마당에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교육비에 괴리감마저 느낀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의사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 여의사들의 고뇌를 일반인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정부는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자화자찬이다.

투표권이 몰린 노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 남의 돈으로 사업하다 파산한 신용불량자들의 면책, 같이 살다 힘들다고 자식 버린 싱글 족들의 사회복지제도 등. 물론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는 여유는 아름다운 인지상정일게다.

그러나 없는 살림에 쌈짓돈까지 긁어 보내 주신 부모님의 정성과 의사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젊음을 바친 열정, 신혼 생활도 반납한채 지새운 수많은 밤에는 정부와 사회가 어떤 보상을 준비하고 있는가?

Input과 Output이 어긋나는 끔찍한 의료 환경은 신출내기 의사들에게 단지 선배의사들이 여유로웠다는 이유하나로 재정적·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더구나 여의사의 경우 슈퍼우먼·슈퍼맘 이상의 능력을 요구당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답답한 부분이 자식 교육이다. 다른 엄마들처럼 '그래 힘들지, 내가 시간 되니 대신 해주마' 내지는 '그래, 차분히 기다려 주마'하고 우아하게 여유불릴 시간이 없다.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빨리빨리'로 몰아붙이거나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잘 해낼 거라는 자기 위안적 생각에 빠져 있다가는 어느 순간 이미 내 아이가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현실이 냉정하다 못해 비정해서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동정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여의사 자살 사건은 그녀의 고뇌와 상심이 얼마나 깊었는지도 헤아리지 못한 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과거엔 희소성과 경제적 힘으로 선망이 되던 의사 엄마, 능력 있는 의사 엄마의 이미지가 이젠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일부 현명한 여의들은 파트타임이나 시간제 동업을 통해 나름의 현실을 헤쳐나가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여유롭지 않은 홀 여원장들의 마음은 잡히지도 않을 '의료정책의 개선'이란 대어를 낚기 위해 낚시대의 찌만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정부는 인술을 담보로 의사들의 목을 조일 것인지, 수많은 대안들만 나열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의사 단체들은 언제까지 제자리 걸음을 할 것인지, 인터넷 홈페이지나 눈팅하는 여의사들은 언제까지 남자의사에게 의존만 할 것인지.

이제는 투정만 할 수는 없다. 國力은 母力이다. 최근엔 醫力도 母力이다. 의대생을 만드는 엄마의 극성처럼 의권개혁을 향한 의사 엄마들의 반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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