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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처방전이 나오기 까지

한 장의 처방전이 나오기 까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8.2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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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진(광주광역시 남구 양승진내과의원)

의사가 전문 지식을 총 동원해 환자를 진찰하고 검사를 통해 병의 최종적인 진단을 내린 후 처방전을 발행하게 되는데 병의 진단뿐만 아니라 한 장의 처방전을 내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 법적인 기준에 적합한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선 환자가 국민보험공단에 자격조회를 하여 등록된 적격자인지를 확인하고 무자격자이면 보험처방이 아니라 일반처방을 해야 한다.

처방전 일련번호 및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약을 처방함에 있어 약품의 종류가 보험 등재약인가 비급여 약인가 아니면 보험에서 인정은 하지만 요양급여기준에 벗어날 때 보험약가의 100/100을 인정해 주는 약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허가사항을 벗어나서 약을 처방했는지, 요양급여 기준에 맞게 약 처방은 됐는지, 심사평가원의 약제사용 적정성평가에 따라 약 개수는 적절하며 고가약을 많이 투약한것은 아닌지, 방문 일을 너무 짧게 잡았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고시한 연령 금기 또는 병용 금기 약품을 처방했는지 확인하고 약물중복처방감시시스템(DUR)에 따라 내원 날짜에 맞추어 방문하지 않을 경우 중복 처방에 대한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는 마지막으로 이런 진료 내역을 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처방전을 발행하는데 일반인이나 환자는 그저 간단히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출력되어 나온 것으로 안다. 동네의원에서 한 장의 처방전이 발행되기 위해 확인이나 승인을 받는 작업이 5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말 환자 진찰보다 더 어려운 느낌도 든다.

그런데 진찰료 가운데는 처방료(외래 관리료)가 포함되어 있어 이 과정을 하나의 진찰행위로 간주한다. 처방료는 처방한 약품의 종류나 처방 일수에 따라 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약품을 처방하거나 처방일수를 많이 낸다고 하여 의사가 처방료를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의사는 약을 처방만 할 뿐 약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므로 약을 많이 처방한다고 해서 의사 개인이나 그 의사가 소속된 병원이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반면 보험공단에서는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해 약을 처방한 경우 진찰료 중에 처방료에 해당하는 부분이 삭감되고, 약값도 처방한 의사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허가사항을 벗어나서 약을 처방한 경우나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고시한 연령금기 또는 병용금기 약품을 처방했다는 이유이다.

형식적으로는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될지 몰라도 의학적 필요성이 있고 환자가 원해 해당 약품을 처방했는데, 이를 부당하다고 약제비를 의사로부터 환수한다면 억울하지 않을 의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약값을 의료기관에서 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환자가 약국에 지불한 약값을 의사로부터 환수를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느냐고 법적 판단을 법원에 해봐도 약제비 환수는 당연하다고 하니 분통을 터뜨리는 의사들이 많다.

서울대병원은 매년 원외처방 약제비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허가사항을 벗어나서 약을 처방했거나 복지부 장관이 고시한 연령금기 또는 병용금기 약품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8억 원 이상 환수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 최고 의료기관 가운데 하나이자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공공 의료기관이다. 그런 서울대병원이 매년 원외처방 약제비로 8억 원 이상이 환수되고 있다. 어떤 의사들은 계속 진료비와 약제비를 삭감당하고 있음에도 처방을 바꾸지 않고 있다.

현행 요양급여기준이 의료상식이나 임상 현실과 괴리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한 요양급여기준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요양급여기준은 우선 의학적으로 정당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임상의학수준에서 인정되는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요양급여기준에서 정한 진료의 수준은 최선의 진료와는 거리가 멀다. 법원 또한 의사가 환자에 대한 진료를 하는데 있어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의사들은 식약청장의 허가사항이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참고로 할 뿐이지 이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FDA의 허가사항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술문헌이나 의약품 정보집에 근거하여 약품에 대한 사용평가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복지부 고시나 식약청장의 허가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원외 처방된 약값을 의사로부터 환수하는 것은 의사의 처방권에 중대한 침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복지부는 요양급여기준이 부당하면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기준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성모병원 의사들은 그러한 절차가 있는지 몰라서 임의비급여 진료를 하였던 것일까.

복지부 장관의 승인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의학적 적절성 보다는 건강보험 재정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도 좀처럼 승인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들은 우선 환자를 위해 미리 승인을 받기보다는 임의로 환자의 동의를 얻어 약 처방을 쉽게 비급여로 하려고 한다.

또한 중복처방에 대한 감시시스템으로 환자의 개인 또는 진료정보가 통신에 흘러 다니고 환자가 어디서 무슨 진료를 받고 있는지 심평원으로 부터 감시받고 있다. 명백히 사생활 침해 행위지만 약 중복을 예방한다는 허울에 감추어져 환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윤리 상 환자의 진료 사실이나 신상정보가 노출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물중복 처방감시 시스템(DUR)이 과연 약물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과다한 약제비의 지출을 예방하는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이 기준에 어긋나는 중복처방이 환자의 적극적인 요구로 중복처방을 하였다면 곧바로 위법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중복처방을 하는 사례는 만성의 중증 질환자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환자는 약의 복용방법이나 부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중복처방을 받더라도 약물오남용을 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고, 중복처방을 무조건 금지한다면 막상 약이 떨어졌을 경우에 개인적 사정으로 처방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제때 약을 복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오히려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의사가 DUR에 반하여 중복처방을 했더라도 환자의 적극적인 요구로 중복처방을 했고 중복처방의 정도가 경미하고 약화사고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중복처방에 대한 보험공단의 환수처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위반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의사의 처방권은 의료법 제18조 및 약사법 제23조에도 근거를 두고 있는 의사의 고유한 권리로서 복지부 고시를 통해 임의로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권을 제한하는 DUR은 약제비 절감에 아무런 효과가 없고 오히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불편과 혼란을 가중시킬뿐더러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관계를 저해하고 상호불신을 야기하는 역효과만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의사의 처방은 법에서 부여한 고유권한으로 고시에 의한 제한이나 요양급여기준에 의해 구속받을 수 없다. 다만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도덕적인 윤리로서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다.

현 시대에서 윤리적 행위가 가장 중시되는 부류는 아마도 '의사사회'일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마감하는 그 시점까지 의사야말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윤리적으로 성찰하고 또 성찰하는 대표적인 전문인이라고 볼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환자에 대해 의사의 직분을 선서로 표명한 이후로 지금까지 의사들은 그 어떤 전문가 사회보다도 윤리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의사는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전문직임에는 틀림없으나 다른 전문직과는 달리 일반인과 항상 대면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있다.

의료법에서는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해 의료행위에 대해 독점권을 부여하고 보호하고 있다. 이들은 부여받은 독점권으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에까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환자들은 자신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의사에게 많은 것을 제공받고 있음과 동시에 높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장의 처방전이 나오기 까지는 진찰과정을 제외하더라도 임상의학수준에서 인정되는 최선의 진료보다 요양급여기준에 의한 여러 가지 고시사항을 통해 약제사용을 규제하고 약물사용 내역을 감시당하고 카드를 사용할 때 단말기로 영수증 승인받는 것처럼 진료내역을 승인받아야 하는 감시와 규제 속에 처방전이 발행되고 있다.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도덕적인 윤리로서 의료보다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고시에 의한 제한이나 요양급여기준에 의해 구속받으며 발행한 이 처방전은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관계를 저해하며 환자에게 불편과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무엇이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게 만드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cdb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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