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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사람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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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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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영(대림성모병원 정신과장)

우리 어린시절에는 동네에 나가 뛰어노는 게 하루 일이었다. 하루종일 공터에서 땅따먹기·공기놀이·고무줄놀이·술래잡기·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밥 때도 잊고 동네 친구들과 진짜 잘도 놀았다.

그도 그럴 것이 70~80년대 동네 골목에는 자동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안전했고 시험도 시험때나 공부좀 하면 되는 그런 정도의 수준이었다. 뭐, 그야말로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 아니 공부해야 하는 필요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엄마, 나 똘똘이네 집 놀러 가도 돼?"
"안돼, 똘똘이 영어공부하는 시간이래."
"엄마, 닌텐도 사줘. 나빼고 진짜 없는 애 2명밖에 없어, 우리 반에."
"딸래미야, 수학 숙제 다 했니? 영어 숙제는? 얼른 끝내고 수영가야지?"
집 앞 마트만 가려고 해도 "얘들아, 차 조심해야해. 어어어~ 조심 해야지, 휴우."

2009년 우리 집 풍경이다. 나도 안다. 아이들이 다~ 정말, 때 되면 할 것이라는 걸. 그리고 발달과정마다 거치고 혹은 마치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는 것도.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아기 때는 엄마(care giver)와 애착을 형성해야 하고, 유치원생 즈음 되면 또래관계를 알아야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 것도 있고 타인과의 반응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하고.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아셨을 것도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획득해야 하는 것 중 모든 기본은 관계이다. 엄마와, 또래와, 타인과의.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사람과 사람이 아닌, 시험과 아이, 게임기와 아이, 경시대회 등수와 아이. 옆집아이 똘똘이와 우리 아이가 아닌 몇등짜리 똘똘이와 또 몇등짜리 우리 딸래미.

쓰다보니 숨막히는 현실이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구나 싶어 부끄럽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우리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훌륭한 사람이란 게 등수로 매겨질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끊임없이 맺어지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글쎄, 과의 특성상 사람간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말이 진리다.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줄여야겠다. 저들 나름의 성장과정에 필요한 빈둥대기나 만화 보고 친구와 놀고 싶어하는 그것들을 인정해야겠다. 글쎄, 훗날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잔소리 안 해서 내가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된 것 같아요"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두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잘난척하지 말고 남들 시키는 거 다해"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배짱좋게 무시해 볼란다. 사람의 인생에 위기가 왔을 때 그 엄마가 언제까지나 관리를 해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타고난 그릇대로 산다는 얘기를 믿으며, 우리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풍요롭고 건강하게 되도록 엄마로서 밑거름이 되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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