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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 디푸드후드- 부시맨 정착지<3회>

마운, 디푸드후드- 부시맨 정착지<3회>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4.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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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준(고려의대 교수)
마운 가는 길은 이전보다 더 뜨거웠다. 날씨가 한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뜨거워서 활짝 열어놓으면 오히려 더 더웠다. 차창 밖에는 어김없이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 예의 그 평원이 펼쳐져 있다.

마운에서는 부시맨족의 이주장소라는 푸두후두를 방문하기로 했다. 푸두후두는 원래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던 부시맨 족을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 때문에 야생 동물 보호라는 미명하에 강제 이주 시킨 것이라 하였다.

부시맨족은 원래 수렵생활로 살아온 종족이기 때문에 농사에는 전혀 익숙치 않으며 정부에서 농사지을 땅과 가축, 집을 제공하였지만 새로운 생활에 적응 못한 많은 부시맨들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트럭을 타고 두 시간 가까이 이동하니 푸두후두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전통가옥 형태의 움막집들이 눈에 띈다. 집이 둥근 형태인 점이 다르긴 하지만 벽은 흙으로 지어져 있고 지붕은 짚단을 엮어 놓은 듯 보이는 게 우리나라 초가집과 어찌 보면 비슷하다.

▲ 마운으로 가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
현대식으로 지어 놓은 집들과 농사지을 땅 그리고 가축을 주고 이곳으로 이주를 시켰으나 대부분 전통가옥을 지어놓고 산다고 한다. 마을에서 학교 근처로 들어가니 부시맨족 아이들이 트럭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낡긴 하였으나 옷은 모두들 입고 있었고 신발을 신은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마르고 키가 작았으나 원래 종족이 그런 것인지 영양부족에 의한 것 인지는 선뜻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밝아 보였고 우리 일행들이 트럭에서 사진을 찍고 카메라의 LCD monitor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자 신이 난 듯 자기도 찍어달라며 "photo me, photo me~! "하고 소리친다.

학교 건물 안에 있던 아이들 중 일부는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give me some food"라고 말해서 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 해 맑은 부시맨족 아이들.

다음날 우리 고대의료원팀은 축구골대 만드는 것을 돕기로 하였다. 날씨는 더 덥고 건조해서 쉽게 갈증이 나고 힘들긴 하였으나 모두들 합심해서 나무를 자르고 운반하여 오후 해지기 전 무렵까지 멋있는 골대를 지을 수 있었다. 다큐팀은 골대 만드는 장면도 찍고 부족장님과 인터뷰도 하였다.

▲ 마을에서 축구 경기하는 부시맨족 아이들.
부족장님은 이 곳으로의 이전을 반대하셨었는데 보츠와나 정부에서 유럽 여러 국가에 당신을 모시고가서 선진국들의 발전상을 직접 보여드렸다 하며, 더 이상 당신의 후손들이 사냥에만 의존하며 지금과 같이 살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신이 직접 부족들을 설득하여 이곳으로 이주해오셨다 한다.

또한 현재 우리일행이 보는 모습은 보잘것없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가 성장하면 지금과는 다른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지켜봐 달라고 말씀하셨다 하여 부시맨족의 애환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마운에서의 마지막 날 푸드후드에 일찌감치 도착하여 학교도 촬영하였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였고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들은 체벌을 받기도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예전 80년대 한국 학교들과 분위기는 비슷한 거 같았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물품기증식이 열렸고 부시맨족의 부족장님을 비롯한 원로분들, 교장선생님 등을 내빈으로 모시고 행사를 치른 뒤 아이다스 축구복과 축구화로 갈아신은 두 팀이 뙤약볕이었지만 시범경기를 시작하였다.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운동장에 우리들이 만든 축구 골대와 하얀색과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의 축구하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흑인 특유의 유연성과 힘이 경기를 보는 내내 느껴졌고 응원하는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의 노래와 춤은 부시맨족 안에 남아 있는 특유의 야생성이 순간순간 들어나 보여 수렵생활을 하던 그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의료원 팀은 아이들이 많은 집에 가서 아이들 상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 필자와 함께 땅을 팠던 볼카(삽을 들고 있는 아이)와 부시맨족 아이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맨바닥에 흙벽과 싸리짚 같은 지붕으로 된 허름한 움막집 근처에 아이들 5~6명이 다 헤진 옷과 씻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쪽에서 단백영양실조시 처럼 배만 심하게 불뚝 나와있고 팔다리는 비쩍 마른 2살쯤 되보이는 아이도 보였다.

한 집에 들어가 아이들 상태를 살펴보았다. 빈혈이 다소 있어 보이는 것과 작고 마른 체구를 빼곤 특별히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보이는 술을 나누어 먹으면서 비틀거리는 곳이 있었다.

술을 파는 술집이라 하였고 얘기 들었던 대로 수렵생활 만을 해오던 사람들이 농사 짓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일에 적응을 못하여 알코올 중독자가 된 이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술집 촬영을 하고 마을의 의료시설에도 가보기로 하였다.

밖에서 보니 딱 우리나라의 보건지소와 같은 규모의 병원이었고 안에 들어가자 약도 십여가지 정도만 구비되어 있었는데 종합비타민과 항우울제를 비롯하여 항생제, 항결핵제등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10여명 정도가 내원한다 하며 자기는 정식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는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무의촌에 한하여만 의료행위를 인정받았던 한지의사와 같은 존재 인 듯 했다. 마을에서 환자가 생기면 자기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무당(주술행위를 하던 전통의사)을 찾아가거나 마운으로 나가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질환의 환자가 가장 많냐고 물어 보았더니 알코올 중독이 가장 많다고 답한다. 종합비타민과 항우울제가 많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푸드후드의 알코올 중독은 정말 심각한 문제인 듯 하였다.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저물어 가는 석양 속에서 힘껏 축구하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다 돌아왔다.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부족장님의 말씀대로, 또 힘껏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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