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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알고보면 부드러운 여자랍니다"
"알고보면 부드러운 여자랍니다"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9.04.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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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 벗고 변호사 사무실 연 유화진 회원

아직미혼 이에요.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혼기를 놓쳤지 뭐예요."

국내 첫 여의사 출신 판사라는 이정표를 세운 유화진(41세) 회원. 유 회원은 최근 4년 동안의 판사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서초동(1554-5 한승아스트라 706호 ☎02-3487-2242)에 유화진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검은 법복을 입고, 근엄한 모습으로 판결을 내렸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었지만 조용한 말투와 수줍은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 혼자만의 상상이 보기좋게 빗나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유 변호사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연희 변호사(의성법률사무소)와 함께 여성 의사로는 처음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 화제를 모은 주인공.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에는 판사로 부임, 첫 여의사 판사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여의사로는 첫 판사 임용…의료전문변호사 새출발
 
"1995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여성 행려환자를 보호하고 치료도 해주는 서울시 여성보호센터에서 근무했습니다."

세 번이나 인공유산 경험이 있는 15살 아이와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치매노인을 비롯해 삶과 죽음이 뒤엉키고, 절규와 탄식이 오가는 밑바닥 인생이었지만 환자와 의사들은 희망을 찾기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여성보호센터를 그만둔 뒤에는 개인의원에서 동네환자를 진료한 경험도 있고요. 대학병원과 공공의료는 물론 민간의료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의료의 거의 모든 형태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죠."

▲ ⓒ김선경 기자 photo@kma.org

2000년 의료대란은 의사로 평범한 길을 걷던 유 회원에게 새로운 세계로 눈을 돌리는 전환점이 됐다.

"의사들은 밥그릇을 위해 파업을 하고, 비싼 약을 써서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낸 몹쓸 사람들이 됐죠. 하지만 약의 남용과 재정 파탄이 의사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환자들은 정작 자신에게는 비싼 약을 써 주길 바라더군요."

왜곡되어 가는 일상에 지쳐갈 무렵 '법'이라는 학문이 눈에 들어왔다.

"법학이란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사고'를 기르는 학문이니 저 같이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에게 꼭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법을 통해 세상을 보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그 후엔 뭘 할 건데?'라는 물음엔 별로 할 말을 찾지 못했지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 생활은 '법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당당히 판관 임용이라는 선택도 받았다.

대법원 공동재판연구관실에서 의료사건을 연구하다 2007년 2월부터는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돼 일반 민사·형사 재판부는 물론 의료·지적재산권·손해배상(교통사고·산업재해) 전담 재판부 등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판결을 맡았다.

"대법원에 있을 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피고가 산부인과 선생님이었는데 대법원까지 상고해서 결국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사건이었죠. 의사 회원들은 참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절감한 사건이었습니다."

유 변호사는 "민사사건의 경우 의사에게 주의·설명에 대한 입증책임을 묻고 있다"면서 "충실한 설명과 진료기록을 해 두고, 위험에 대비해 동의서를 잘 받아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고, 불가피하게 의료분쟁이 발생했더라도 소송으로 가기 보다는 중재나 합의를 하는 것이 의사 회원과 환자 모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나가던(?) 법관 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로 새 출발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유 변호사는 "무엇보다 모든 책임을 갖고, 방향을 설정해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웃었다.

"의뢰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남에게 설명하기 어렵듯이 의사이자 법조인의 경험을 십분발휘해 객관적으로 조언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전문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의료분쟁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유 변호사는 "의대생들은 물론 개원을 하고 있거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회원들을 위해 의료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최근 사법연수원에서 의료사건 재판부 법관을 대상으로 의료사고와 관련한 강의를 시작했다. 병원 몇 곳으로부터도 의료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놓은 상태다.

유 변호사는 "의사·환자·법조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며 "언제든 불러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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