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다
한센인들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다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9.03.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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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원장(안성열성형외과의원)

균이 피부·말초신경계를 침범해 신경이 마비되고, 그 영향으로 인해 얼굴이나 손과 발의 조직을 변형시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한센인들에게 30여년간 얼굴을 고쳐준 따뜻한 손길이 있다. 

일반인들은 한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졌다고 해도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생활하기 껄끄러운데 매우 월요일마다 이들을 진료하고 수술까지 해준 의사가 있어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안성열 원장(안성열성형외과의원)은 한센인들의 부자연스러운 얼굴과 손과 발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이전에 먼저 마음의 상처부터 어루만지고 보듬어준 샘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안 원장이 진료를 하는 월요일 아침만 되면 한국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은 여느 때보다 많은 환자들로 북적인다.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마음의 아픔까지 나눌 수 있는 '의사'이면서 '친구'이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성라자로마을 찾아 무료 성형수술

안 원장은 1992년부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위치한 성라자로마을을 찾는다. 한센인들이 모여살고 있는 성라자로마을 바로 옆에 있는 한국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서 한센인들에게 무료로 성형수술을 해주기 때문이다.

대구 파티마병원에 있을 때에는 1개월에 한번 찾았으나 1992년부터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매주 부설의원을 찾게 된 안 원장은 1996년 개원을 하면서 한센인들에게 더 많은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매주 월요일 오전만 진료를 하는 안 원장은 외래 30여명을 진료하기도 바쁠텐데 2~3명에게 수술까지 한다. 게다가 입원해 있는 환자들까지 둘러보면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수술 준비실 한켠에 있는 달력에는 수술해야 할 환자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할 정도로 그가 한센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해주고 있는지 엿보인다.

"신경이 바미된 환자들은 대부분 눈이 잘 감기지 않거나 코와 입, 손과 발 등이 기형적인데 적어도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치료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입술이 떨어진 사람은 입술을 복원해주고, 눈썹이 없는 사람은 눈썹 이식수술을 해주기도 한다는 안 원장은 한센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약을 통해 전염성이 사라질 수 있고, 신체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센인 1세대에 해당하는 60~80세 연령층은 당시 우리나라의 의학수준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결과 얼굴과 손발에 남은 후유증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단다.

"요즘엔 국가에서도 한센인들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고 있어 생활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얼굴과 손발에 후유증이 있는 분들은 사회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 마음의 병이 큽니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의 상처부터 치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무료 성형수술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경북의대 시절부터 한센인과 인연 맺어

안 원장이 한센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시절 부터다.

경북대병원 피부과를 이끌었던 서순봉 박사가 설립한 한센병치료센터를 통해 의과대학 시절부터 매일 5~6명 정도의 한센인 진료를 도왔다. 그러다보니 한센인들이 낯설지 않았고 편견 따위는 자리잡을 틈도 없었다. 다만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전공의 시절 안 원장은 닥터 워렌이라는 의사가 병원에서 한센인을 진료하면서 피부질환은 물론 안과질환, 손과 발, 얼굴 등의 성형수술을 혼자 다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는 피부과질환은 피부과의사가, 안과질환은 안과의사가, 손과 발은 정형외과의사가 맡아서 했기 때문이다.

"닥터 워렌이 혼자 한센인 진료를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여러 진료과의 의사들이 개별적으로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혼자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안 원장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세브란스병원을 빼고는 성형외과가 없었기 때문에 경북대병원에서 피부과 전공의를 마치고 곧바로 성형외과 공부를 위해 일본행을 택했다.

세부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서순봉 박사가 피부과 전문의로서 한센인을 진료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지만, 성형외과 공부를 제대로 해서 한센인들을 진료하고 싶었던 속마음이 있었기에 스승도 허락을 했다.

안 원장은 일본동경여자의과대학 성형외과에서 7년간 공부하면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그것도 모자란다고 판단한 안 원장은 다시 미국으로 발걸음을 옮겨 텍사스주립대학 화상센터에서 연구원으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안 원장은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부설의원을 1개월에 한번씩 찾기 시작했다. 스승과의 약속도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한센인들에 대한 봉사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센인들은 성형외과를 찾는 일반환자들보다 불만이 더 많아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비스를 해준다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일반환자와 똑같이 고도의 기술로 수술을 해줘야 뒤탈이 없거든요." 그렇게 30여년간 성형수술을 해준 환자만해도 이제는 2000여명이나 될 정도다.

보여주기식 봉사 아닌 지속적 관심 필요

안 원장은 한센인들에게는 특히 보여주기식 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봉사활동은 무의미해요. 한센인들이 언제 어디서든 치료 받을 수 있게 접근성을 높여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또 많은 의사들 참여가 중요한데, 무엇보다도 일반환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부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는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뼈있는 메시지가 담겼다.

"한센인들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고통받게 해서는 안됩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그동안 한센인을 입원시킬 때 숨기고 했는데, 앞으로는 떳떳하게 밝히고 일반환자들과도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해요. 한센인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절대로 전염성이 없다는 것은 의사들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안 원장은 차별만 해주지 않아도 한센인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의 이러한 소신 때문일까. 부설의원에는 일반환자와 한센인 환자가 아무런 불편함 없이 똑같이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진료를 받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환자들의 불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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