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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계·환자 손잡고 보험사 횡포 막아야"
시론 "의료계·환자 손잡고 보험사 횡포 막아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3.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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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숙(보험소비자협회 대표)

요즘 방송되고 있는 TV 일일드라마 한 장면을 보자. 보험사기 혐의를 받아 소환을 받은 검사 앞에 앉은 의사에게 검사가 하는 대사다.

 "아버지가 원장, 아들이 부원장, 어머니도 의사, 이거, 가족들끼리 너무 다 해먹는 것 아닙니까? 거,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분들이 이런데 들락거리면 되겠습니까? 최소한 의사로서 품위가 있는데 사회적 명성에 어울리게 행동하셔야지, 사기가 뭡니까 사기가. 입·퇴원 기록하고 외출 기록, 그리고 진료기록 등에서 허위기재 사실들이 발견됐는데"라고 한다.

두 의사가 검찰 소환을 받기 전 '보험범죄방지센터'에서 나왔다는 한 남자는 병원에서 무단 외출환자가 많고 입원이 필요 없는 환자에게 입원 확인서도 발급해 주었다며 관할 구청을 들먹이며 정황 조사를 위해 외출 외박 기록부를 압수하겠다고 한다.

의사가 '혹시 보험공단 쪽에 아는 사람 좀 없냐?'고 묻는 장면도 나온다. 경찰은 병원이 보험사기에 연루 되었다는 고소가 들어왔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보이며 서류들을 챙기려 한다.

만약 이 장면을 본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의사가 아닌 필자가 보더라도 '모멸감' 그 자체였다. 게다가 '보험공단'이라 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보험사기를 무마해 줄 청탁의 대상으로 비춰진 것 같아 화가 났다.

'보험범죄방지센터'에서 나온 남자는 또 뭔가? 병원 종사자들이 절절 매는 모습에 현실에서도 저런가 싶을 정도로 비굴하게 느껴졌다. 마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험범죄방지센터 직원의 '위용'을 보여주려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진짜 의사'가 방송국에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 필자 사무실로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찾아왔다. 2001년 11월에서 2006년 5월 사이에 575일간 입원을 하고 한 생명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로 몰려 형사 재판을 받았으나 '혐의 없음'을 판결 받은 사람이다.

환자는 보험금을 받기 위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이 아닌 조정을 통하여 일부의 보험금을 받고 보험 계약은 계속 유지하는 것에 동의하려 했는데 보험사가 이를 거부하여 판사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결국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라는 예상치 못했던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환자를 직접 진료했던 의사들의 진술을 인정했다. 보험사는 '통상 2주 정도의 입원기간을 거친 후 통원치료가 가능한데도 다액의 보험금 수령에 필요한 지속적 입원일수만을 형식적으로 충족시킨 것'이라고 했고, 법원의 모대학병원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3주의 입원치료로 충분하고 그 후에는 통원치료로도 치료가 가능한 상태였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패를 당한 보험사는 보험금을 주기는커녕 항소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소송 자료를 살피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을 보았다. 환자가 입원한 기간이 '정상 입원'이었음을 법원이 인정했음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적정한 입원치료 기간을 초과하여 입원하였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실제 입원일수 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평가한 적정 입원일수는 21.2%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심평원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당뇨병만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타당할지 모르나 당뇨병 외에도 합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의사들의 평가결과를 인정했다.

만약 재판부가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이 환자를 진료했던 의사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았던 보험금(의료비)의 80% 정도를 환수당할 일이다. 환자 또한 지속적인 치료를 계속 이어갈 수 없을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나이롱환자 근절을 목적으로 '진료비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일원화하자'는 최근의 목소리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다.

환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서류가 있다. 보험금 지급 사유를 입증하기 위해서 환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나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입원 기간을 알기 위해서는 입·퇴원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진단서 등을 발급해 주는 의사는 면허증을 걸고 진료기록에 근거하여 사실대로 기재해야 하며, 환자는 의사가 발급해 준 진단서 등을 위·변조 없이 보험금을 지급할 보험사에 그대로 전달만 했다면 보험사는 그 진단서 등을 믿고 보험금을 지급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진단서 등의 진위여부를 가리겠다며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보험사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골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사법처리하겠다며 경찰과 검찰이 소환을 한다면 이로 인한 의료계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다.

의료계와 환자가 왜 이 같은 횡포를 보험사로부터 당해야 하는지 심각히 생각해 볼 일이다. 의료계와 환자, 그리고 의료비를 내주는 보험가입자들이 머리를 맞대면 굳이 영리보험사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리보험사에 낼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료로 낸다면 의료계도 지금처럼 보험자 따라 보험금 정산을 달리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이롱 보험사' 때문에 더 이상은 의료계와 환자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될 일이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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