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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와 근육통(하)

농사와 근육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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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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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 작 '괭이를 든 사람'(1860~62), 미국 로스앤젤스 J폴 게피 미술관.

대개 50세를 넘은 농민은 등골이 농사일에 적합하게 앞으로 구부러지고 이런 자세로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게 된다.

농업의 기계화나 제초제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농사일에 종사하던 농민은 '이삭줍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자세로 일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농민은 요통에 시달려야 했다.

또 한편으로 밀레의 '이삭줍기'는 전통적인 여성 노동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 가사일 에 메달려야하는 여성들은 늘 허리를 구부리게 된다. 이렇게 허리를 구부림으로 인해 허리앓이를 얻게 된다.

이렇듯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은 허리앓이가 생겨날 수 있어 허리앓이는 한 가정의 삶을 꾸려나가고 지탱하는 봉사적인 증상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허리앓이는 어린애를 낳을 때의 배앓이와 더불어 위대한 생명 탄생, 인류의 번영과 문화 창달의 근원적인 뿌리가 바로 여성의 배앓이·허리앓이와 연계됨을 시사하고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1860-62)라는 작품은 일에 지친 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 광활한 벌판에 괭이를 의지하고 서있다. 힘이 손과 발에는 줄 수 있으나 다리와 허리에는 줄 수 없는 듯싶다. 이 남자는 고된 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 혁혁하다.

오른 손은 괭이자루에 얹어 의지하고 그 위에 왼손을 올려놓아 온몸이 괭이자루에 의지하고 있다. 땅에다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다가 끊어져 오는 허리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일어섰지만 허리에 힘을 줄 수 없는 듯 보이고 얼굴은 무표정한데다가 눈은 현기증이 나서 그런지 찡그리고 있다. 

이 그림을 본 한 미술 평론가는 그림 왼쪽에 보이는 가시덤불을 가시면류관과 결부시켜 거의 사막과도 같은 땅 한가운데서 간신히 괭이의 나무 자루에 몸을 의지하고 슬픔에 잠긴 모습은 '영원히 밭을 일구는 비탄에 잠긴 그리스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종교적인 해석으로 좋게 평했다.

이렇게 노동을 예찬하고 농민의 존엄을 표현한 밀레의 그림이 자본가와 노동계급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당시의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에서 그의 그림을 좋지 않게 평한 기록도 있다.

즉 '정신병원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을 그렸다느니, '지금 일을 끝마친 것인지 아니면 살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는 등 밀레의 농민에 대한 인식을 문제 삼고 추한 것을 추한 대로 그리지 않고 미화시켰다는 혹평도 했다.

이 그림을 의학적인 눈으로 보면 체중·자세·동작·외력 등의 여러 요소의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척추의 추간원판(椎間圓板)의 내압이 오르고 그 내압의 상승으로 인해 균열이 생겨 수핵(髓核)이 밖으로 탈출된다. 이것을 추간판 헤르니아(disc herniation), 속칭 '디스크'라고 하는데 이 '괭이를 든 사람'의 주인공의 자세나 표정은 마치 디스코 환자의 모습과 표정에 너무나 흡사하다.

이렇듯 밀레의 농민화중에는 이 두 그림 이외에도 허리앓이와 관계된다고 보여지는 그림이 많다. 즉 신성한 노동을 '미'라 본다면 원치 않는 허리앓이는 분명 추한 동반자임에 틀림이 없다.

밀레는 노동과 근육의 통증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한 사실적인 묘사를 의사의 눈으로 보면 추미의 병리적인 의미있는 사실들이 눈에 띈다.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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