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0:30 (금)
신예용 회원 서재필의학상 수상
신예용 회원 서재필의학상 수상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8.12.19 13:5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재필기념회 15일 시상식

신예용(91) 신안과병원 명예원장이 서재필의학상을 받았다.

재단법인 서재필기념회(이사장 백낙환·인제대학교 백병원 이사장)는 15일 인제대학원대학교 9층 인당홀에서 제 5회 서재필의학상 시상식을 열었다.

▲ 신예용 명예원장(오른쪽)이 백낙환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으로부터 서재필의학상을 받고 있다.

신예용 명예원장은 안과 의사로 의학 연구·발전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일깨우고 몸소 실천한 점을 인정받아 서재필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서재필의학상은 젊은 세대와 후손들에게 서재필 선생의 위대한 애국애족 정신을 일깨우고 본받게 하기 위해 서재필기념회가 제정한 상이다.

송재(松齋) 서재필(1864∼1951) 선생: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됐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 1889년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세균학을 연구해 의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1896년 귀국, 중추원 고문에 임명됐다.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이상재·이승만 등과 독립협회를 결성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썼으나 수구파 정부와 일부 외국인의 책동으로 미국으로 추방됐다. 서재필 선생은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있다가 3·1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잡지 <The Evening Ledger>와 제휴, 한국문제를 세계 여론에 호소했으며,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상해임시정부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연판장을 제출했으며, 1925년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 일본의 침략을 폭로·규탄했다. 1947년 미군정 장관 J.R.하지의 초청으로 귀국, 미군정청고문을 맡기도 했으나 이승만과의 불화로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