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 만테나(Andrea Mantegna 1431-1506)는 북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하고도 뛰어난 화가로 묘선이 날카롭고 명확하며 특히 인체의 해부학적 구성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1480)의 주인공인 세바스티아누스는 전설에 따르면 3세기경 다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병 장교였다고 한다. 은밀히 기독교를 믿고 있었는데 신앙이 발각된 동료 두 사람이 처형당하자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가 그 역시 처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화살형에 처하게 되어 사수들이 쏜 화살이 집중적으로 그의 몸에 맞아 9개의 화살이 그의 몸에 박혔다. 그래서 형 집행관은 그가 죽은 것으로 판단하고 그의 시체를 내다 버리도록 했다.
그러나 이레네라는 여인이 그를 데려다가 화살을 뽑고 잘 간호해 살아났다. 그는 다시 황제 앞으로 나가 더욱 굳어진 자기의 신앙을 천명했다. 죽은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가 살아온 것에 당황한 황제는 이번에는 몽둥이로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
화살을 맞고서도 살아난 성인이라는 바로 이 이미지에 사람들은 그를 방패막이와 같은 성인으로 생각했다.
만테나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화면에 폐허가 된 고대 로마의 건물 기둥에 묶인 세바스티아누스, 그의 몸에는 9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물론 화살이 치명상을 입힐만한 중요 장기나 부위에 맞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신의 섭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성인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 표정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활을 쏜 두 명의 사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자신들이 쏜 화살이 만족스럽게 일을 끝맺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즉 그들의 착각으로 인해 초인간적인 힘이 태어났으며 또 인간의 좁은 시야는 자주 잘못을 간과하는 것을 드러 낸 것이다.
그러나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또 이런 전염병은 죽음의 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에 맞으면 병이 생겨서 죽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전염병이 돌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같은 성인의 방패막이가 그들에게는 절대로 필요했다. 즉 그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기에 그를 경모하면 자기도 전염병의 화살을 맞아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4세기경부터 시작되어 14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 국민들 간에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페스트가 대유행하여 휩쓸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앞을 다투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그렸다. 또 당시 화가들에게 남자 누드를 그릴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또 이렇게 흔치않은 기회를 갖게 된 화가들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배운 멋진 인체 표현의 좋은 시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고대 이교문화의 급속한 확산을 경계했던 교회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이교적이고 인문적인 예술정신의 진작을 묵묵히 도와준 셈이다. 이렇듯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르네상스 예술의 방패막이 뿐만이 아니라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의 방패막이로서도 민중의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의 성인 중에는 방패막이로서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인이 세바스티아누스이었다.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