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과 죽음의 방패막이(하)
흑사병과 죽음의 방패막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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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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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 만테나(Andrea Mantegna 1431-1506)는 북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하고도 뛰어난 화가로 묘선이 날카롭고 명확하며 특히 인체의 해부학적 구성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 만테나 작 :'성 세바스티아누스' 148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1480)의 주인공인 세바스티아누스는 전설에 따르면 3세기경 다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병 장교였다고 한다. 은밀히 기독교를 믿고 있었는데 신앙이 발각된 동료 두 사람이 처형당하자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가 그 역시 처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화살형에 처하게 되어 사수들이 쏜 화살이 집중적으로 그의 몸에 맞아 9개의 화살이 그의 몸에 박혔다. 그래서 형 집행관은 그가 죽은 것으로 판단하고 그의 시체를 내다 버리도록 했다.

그러나 이레네라는 여인이 그를 데려다가 화살을 뽑고 잘 간호해 살아났다. 그는 다시 황제 앞으로 나가 더욱 굳어진 자기의 신앙을 천명했다. 죽은 것으로만 생각했던 그가 살아온 것에 당황한 황제는 이번에는 몽둥이로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

화살을 맞고서도 살아난 성인이라는 바로 이 이미지에 사람들은 그를 방패막이와 같은 성인으로 생각했다.

만테나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화면에 폐허가 된 고대 로마의 건물 기둥에 묶인 세바스티아누스, 그의 몸에는 9개의 화살이 박혀있다. 물론 화살이 치명상을 입힐만한 중요 장기나 부위에 맞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은 신의 섭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성인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 표정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활을 쏜 두 명의 사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자신들이 쏜 화살이 만족스럽게 일을 끝맺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즉 그들의 착각으로 인해 초인간적인 힘이 태어났으며 또 인간의 좁은 시야는 자주 잘못을 간과하는 것을 드러 낸 것이다.

그러나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또 이런 전염병은 죽음의 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에 맞으면 병이 생겨서 죽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전염병이 돌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같은 성인의 방패막이가 그들에게는 절대로 필요했다. 즉 그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기에 그를 경모하면 자기도 전염병의 화살을 맞아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4세기경부터 시작되어 14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 국민들 간에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페스트가 대유행하여 휩쓸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경배 의식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앞을 다투어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그렸다. 또 당시 화가들에게 남자 누드를 그릴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또 이렇게 흔치않은 기회를 갖게 된 화가들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배운 멋진 인체 표현의 좋은 시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고대 이교문화의 급속한 확산을 경계했던 교회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이교적이고 인문적인 예술정신의 진작을 묵묵히 도와준 셈이다. 이렇듯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르네상스 예술의 방패막이 뿐만이 아니라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의 방패막이로서도 민중의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의 성인 중에는 방패막이로서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인이 세바스티아누스이었다.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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