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과 죽음의 방패막이(상)
흑사병과 죽음의 방패막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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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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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뵈클릭작 '페스트' 1898, 바젤 미술관 소장
문헌에 의하면 페스트는 542년 이집트에서의 대유행을 시작으로 6세기 동안 유럽을 휩쓴 무서운 병이었다.

1348년에는 이탈리아·프랑스 등에 퍼져 서유럽 인구의 약 1/3에 해당되는 3500만 명이 사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6000~7000만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질병의 원인을 몰았던 당시 사람들은 죽음의 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에 맞으면 이 병에 걸리게 된다고 생각했다. 병에 걸리면 온 몸이 검게 변하고 순식간에 사망해이 병을 흑사병(黑死病·Black death)라고 하였다.

그 죽음의 화살을 피하려면 방패막이가 필요한데 그것에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와 같이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는 성인을 경모하면 자신도 전염병의 화살을 맞아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페스트 유행의 양식과 이 병으로 처참하게 사망한 정경을 그린 뵈클린의 그림과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한 만테나의 그림이 있어 이를 비교하면서 당시 죽음의 개념을 회상해 본다.

바젤 출신의 화가 뵈클린(Arnold Bockline 1827-1901)은 죽음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장 그렸다. 그가 이렇게 죽음과 관계되는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화가로서 출세작이 없어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의 부인과 세 아들이 줄줄이 사망했으며. 훗날 겨우 생활이 안정되었을 무렵에는 차녀와 7남이 사망하는 등 여러 명의 가족과 사별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 그가 그린 것이 '페스트'라는 작품이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898년으로 이 때는 유럽에서 페스트가 진정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그는 19세기말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종말론적 불안인 페스트의 검은 그림자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만 해도 페스트가 균에 의한 감염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어떤 죽음의 그림자가 있어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뵈클린의 '페스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슬이 시퍼런 낫으로 하찮은 인간의 목숨을 마치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듯이 닥치는 대로 앗아 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한 감염인데 그 균을 갖고 있는 들쥐 또는 집쥐 등의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이 균을 사람에 옮겨 감염된다. 보통 2~6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림프절(淋巴節)에 염증을 일으키고 균이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지면 균혈증(菌血症)이 되고 이어서 간·지라·폐·피부 및 점막 등에 출혈성인 괴사를 일으켜 마치 사람이 검게 썩는 것 같이 보이게 된다.

세균이 폐에 침범하면 출혈성 폐렴이 된다. 이렇게 되면 비말 감염(飛沫感染·droplet infection)이라 해서 가래나 침에 포함돼 있던 세균이 호흡기를 통해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 일단 감염되는 전염 속도가 빨라지고 잠복기도 짧아서 2~4일 안에 심한 패혈증으로 진행되며 이 때는 심한 호흡곤란·청색증을 일으키게 되고 발병한 지 2~3일이면 사망에 이른다.

'페스트'는 흑사병이 커다란 낫으로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는 식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다는 생각에서 나온 그림이다.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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