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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새삶 찾아주기 30년…2000여명에 고운 얼굴 찾아줘
한센인의 새삶 찾아주기 30년…2000여명에 고운 얼굴 찾아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11.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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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원장(안성열성형외과)

한국한센인협회 부설 의원에 동행 취재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밝히고도 봉사 현장이 어떨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한센병에 대한 기초 상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센인을 가까이에서 접하지 못한 이의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은 옆집 아줌마, 동네 아저씨와 다를 것이 없다. 한센인의 고운 얼굴에서 지난 30년간 한센인의 곁을 지킨 안성열 원장의 열정이 느껴진다.

▲ 매주 월요일, 20명 남짓 외래 환자와 3명 내외의 수술을 집도한다.
월요일 아침, 한국한센병복지협회로 출근
안성열 원장의 월요일은 남다르다. 1992년부터 17년째,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경기도 의왕시에 자리한 한국한센인협회 부설 의원으로 출근한다. 안 원장은 이미 환자들 사이에 이름난 명의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인한 눈 주의의 내외 반검이나 안검하수, 안면 피부 처짐, 빠진 눈썹을 재건하는 수술까지… 안성열 원장이라면 한센인에게 필요한 치료와 수술 등 불가능한 것이 없다. 환자들은 '지난 번에는 눈을 수술했으니 이번에는 입술 주변의 주름을 없앴으면 좋겠다.', '코가 조금만 더 높아졌음 좋겠다'며 좀더 고운 얼굴을 위한 요구사항이 많다.

환자들의 고민이 말해주듯 한센병은 더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천형이 아니다. 초기에 발견하면 일주일 남짓 약을 먹는 것 만으로 전염성이 사라지고, 신체 증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십 수년간은 신환도 거의 없어 한센인의 평균 연령도 70대를 훌쩍 넘겼다. 3만여 국내 한센인에게 절실한 것도 이제는 병의 치료보다는 얼굴과 손발에 남은 후유증을 조금씩 지워가는 것이다. 안 원장이 지난 20년간 지켜온 한센병 환자들의 성형수술이 그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스승을 통해 한센인과 맺은 인연
안성열 원장과 한센인들과의 인연은 70년대 초, 경북의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북대 피부과를 이끌었던 서순봉 박사(前 경북의대 학장)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설립한 한센병 치료센터를 통해 의대시절부터 한센인을 만나왔다.

특히 경북지역은 한센인 집성촌이 많아 하루에도 수십 명의 한센인 외래 환자들이 경북대병원을 찾았다. 의대 시절부터 한센인을 가까이서 접했으니 편견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 한센병은 그저 피부과 질환의 하나일 뿐이고, 한센병을 가진 환자들도 많은 환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센인을 만나며 성형외과 전문의자격을 고민해
당시 스승인 서순봉 박사의 뜻은 절대적이었다. 세부 전공 선택부터 근무지까지 서순봉 박사의 조언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안 원장은 부산 모처의 신생 병원을 추천한 스승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 일본에서 성형외과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것. 그가 피부과를 전공하며 한센인을 가까이서 돌볼 것이라 믿었던 스승에게 이보다 더 큰 실망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성형외과 공부를 위해 일본행을 선택한 속내는 다르다.

"그때만해도 국내 성형외과 전공의가 없었어요. 한센인들을 치료할 때도 눈은 안과의사가, 손은 정형외과에서 수술하는 등 증상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홍콩에서 온 성형외과 의사인 닥터 워렌이 있었는데, 혼자 다 해내요. 한센인들에게 필요한 수술이라면 안과 쪽이든, 손이든 척척 해내는 모습이 대단했죠."

그는 스승에게 성형외과를 제대로 공부해서 한센인들의 치료에 반드시 보탬이 되겠다는 다짐을 남기고 일본을 향했다. 그렇게 일본동경여자의대 성형외과에서 7년을 보내며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향해 미국텍사스주립대학의 화상센터에서 연구원으로 1년 여의 시간을 보낸다. 피부과 전문의로서,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좀더 완벽해지고자 하는 그의 욕심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러나 안 원장은 괜히 시험만 많이 봤다며 너털 웃음을 웃는다.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한센인을 찾아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그는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센인들을 찾았다. 1989년,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기 전 근무하며 한센인들을 진료했던 대구 파티마병원과 인근 기관을 통해 한센인들을 진료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많았다. 그 전에는 피부과에 한정된 진료를 했다면, 이제는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눈 주변의 안면부 수술부터, 손가락·발가락 등의 재활 수술까지 가능해진 것. 그는 그렇게 스승 서순봉 박사와의 약속을 지킨 게 된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피부과 성형외과적 치료를 받은 한센인이 20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의료 봉사의 햇수와 환자수를 꼽아보는 것이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이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에요. 이 상황이 특별할 것도 없고, 한센인이라고 해서 제 개인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과 다를 것도 없어요. 저는 의사로서, 그분들은 환자로서 만나는 것이니 한센병 후유증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안 원장은 한센인을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난 20년간 그래왔듯 의사인 본인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고, 환자들과 만나는 순간순간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하다.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조용한 힘이 읽힌다. 안 원장의 조금은 특별한 월요일 출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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