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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개원가 '1차 의료가 흔들린다'(하·끝)

위기의 개원가 '1차 의료가 흔들린다'(하·끝)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8.10.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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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병·의원 살려야 건강보험 지속 가능
의원 건당 요양급여비 7년 전 보다 20% 낮아
돈 쓸데는 많고…올해 수가계약 '산 넘어 산'

의료기관 경영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임금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9월 열린 의료정책포럼에서 '의료기관 운영실태와 과제' 주제발표를 통해 "부채를 안고 있는 의원이 전체 의원의 46%에 달한다"며 "이들 의원 한 곳 당 평균부채는 3억 2626만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절반 가까운 개원의들이 막대한 개원 비용에 발목을 잡히고, 낮은 수가 구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3∼4억원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원가의 70% 선에 머물고 있는 낮은 의료수가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부채에 시달려야 하는 동네 병·의원들은 올해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아파도 참는다'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가능한 단순한 질환도 3차 의료기관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동네 병·의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기왕 진료를 받을 거라면 대형병원,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가야 한다는 잘못된 의료이용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감기마저 큰 병원을 찾는 잘못된 행태 속에 1차 의료기관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 의협 전철수 보험부회장과 장석일 보험이사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적정 수가 인상만이 국민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다"며 2009년 의원 수가 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체 의원 중 46% 부채 시달려…평균 3억 2626만원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악화는 건강보험수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수가계약제가 도입될 당시인 2001년 의원급 의료기관이 전체 요양급여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1%였으나 2006년 26%, 2007년 24.5%, 2008년 상반기 24.3%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전체 요양기관 가운데 10% 가량의 비용이 의원급에서 약국이나 종합병원 등 타 유형으로 빠져나갔음을 의미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2008년 상반기 요양기관종별 이용 현황에 따르면 병원의 요양급여비용은 전년 같은기간에 비해 23.68% 증가했으며, 약국은 10.04%의 증가율을 보였다. 종합병원(8.42%)·치과병원(7.19%)·종합전문요양기관(7.08%) 등도 7% 이상 요양급여비용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의원은 4.90%, 한의원은 2.53%, 치과의원은 1.98% 등으로 집계돼 의원급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 증가율은 미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진찰료 비중은 2007년에 비해 떨어진 반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입원료 비중은 올라간 것으로 파악됐다.

▲ 의원급 의료기관 현황

진료행태별 의료이용 자료를 보면 입원일수는 2004년 4.06%, 2005년 5.60%, 2006년 13.14%, 2007년 17.92%, 2008년 상반기 13.46%로 2006년을 기점으로 두 자릿수 증가추세를 보인반면 외래방문일수는 2004년 2.76%, 2005년 3.39%, 2006년 4.36%, 2007년 2.25%, 2008년 상반기 2.44%로 2006년을 정점으로 완만한 감소세로 전환되고 있다. 즉 2006년을 기준으로 입원과 외래 이용률이 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연도별 의원급 원가보존율 현황

의원의 건당 요양급여비용에 관한 통계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악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의원의 건당 요양급여비용은 2001년 2만 6931원에서 2007년 2만 1827원으로 약 20% 가량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건당 요양급여비의 감소 추세는 2008년 들어 심각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상반기 의원의 건당 요양급여비용은 2007년 상반기(2만 8015원)에 비해 무려 38.18%가 줄어든 1만 7315원을 기록했다. 반면 약국은 2001년 1만 8685원인 건당 요양급여비용이 2만 1131원으로 13.1%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기관당 요양급여비용은 72%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권오주 원장(서울 노원·권오주의원)은 "의약분업 이후 수가조정과정에서 외래보다는 입원과 약국에 치중해 왔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며 "진찰료를 비롯한 의료기술료를 저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분업 이후 수가조정 '입원'·'약국' 집중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장성 강화정책의 대부분이 종합병원급에서 커버할 수 있는 중증질환에 집중되고, 보험재정 안정을 위해 시행한 진찰료 처방료 통합·진찰료 차등수가제·급여기준 강화 등의 급여 억제정책이 주로 동네 병·의원급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1차 의료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 1차 의료 육성 정책은 참여정부에서 외면받은데 이어 실용정부에서도 의료산업화·의료시장 개방 등 대형병원에 초점을 맞춘 의료정책이 이어지면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 가정의학과의원을 개원했다가 경영위기를 돌파하지 못한 채 폐업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양염승 대한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 법제이사는 "1차 의료의 붕괴는 1차 의료기관과 개원의의 몰락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원의 문지기 역할이 파괴되고, 국민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며, 의료비 상승을 유발하는 '고 비용, 저 효율 시스템'으로 의료체계를 개편을 유발한다"며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이나 발전방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 이사는 "참여정부에 이어 MB 정부에서도 국민건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1차 의료에 투자해야 할 재원을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위기에 봉착한 동네의원들이 비만이나 미용으로 눈을 돌리면서 1차 의료의 틀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철수 의협 보험부회장은 "의사의 무더기 배출로 의원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요양급여비용은 해마다 감소하는 상황에서 경제난으로 환자가 격감하는 삼중 사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폐업을 못하니까 문을 열고 마냥 환자를 기다리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개원가의 현실을 설명했다.

전 부회장은 "1차 의료의 붕괴가 충분히 예견돼 왔음에도 정부의 1차 의료기관 육성대책은 전무하다"며 "1차 의료가 무너지면 국민의 건강이 전반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장석일 의협 보험이사는 "각 의료기관의 진료수준에 큰 차이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보험이사는 "의료기관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정책적·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 하는 정부의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지난 5월 3일 열린 의협 창립 100주년 기념 32차 종합학술대회에서 '알마아타 선언 30주년 기념 1차 의료 포럼'을 열고 정부의 1차 의료 정책이 부재하다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1차 의료 전문가들은 "의료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하고, 주치의제도는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동안 세계 각국의 의료정책이 수요자와 지역사회 주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양질의 1차 의료 전문의를 양성하고, 주치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차 의료 붕괴' 건보 지속가능성 악영향

9월 말 현재 건보 누적수지는 2조 3845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계는 건보 흑자의 배경에는 동네 병·의원에 집중적인 타격을 입힌 수차례의 재정안정화 대책이 자리하고 있는만큼 원가의 70%에 불과한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의협은 전철수 보험부회장·장석일 보험이사·안양수 기획이사·최종욱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를 비롯해 보험국 임직원들이 수가협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으나 경제 침체라는 변수 앞에 이렇다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09년도 수가를 결정하기 위한 의약계와 공단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전반적인 경제 침체를 감안해 수가를 동결해야 한다"는 벽에 부닥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단은 의료기관 이용률 낮아졌기 때문에 진정한 흑자가 아니라는 입장과 함께 보장성 강화와 비급여부분의 확대에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은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1차 의료기관의 경영환경을 개선하는데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공단은 요지부동이다.

병협은 병협대로 물가인상분·인건비 상승분·관리비 인상분 등을 수가에 반영한 후 다른 수가인상 요인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한 해 1조 7360억원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노인 틀니에 대한 건보 적용을 추진하고 있어 잘못했다가는 제 2의 재정 파탄사태를 부를 수 있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올해 안에 중증질환과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위해 3206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나서 누적수지 흑자 재정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는 형국이다.

보다 근본적인 1차 의료 육성을 위한 의료정책과 법률이 마련되지 않는 한 매년 소모적인 수가협상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17일로 마감이 예고된 의료계와 공단과의 수가협상이 쉽사리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동네 병·의원의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계속되고 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동네 병·의원의 발버둥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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