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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와 베토벤(하)
메두사와 베토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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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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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거장 베토벤은 심한 간경변을 앓았기 때문에 복수가 차곤했다. 그의 복벽에는 메두사의 머리가 형성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 또 화가 스틸러(J.K. Stieler)가 그린 '베토벤의 초상화'(1819-20)를 보고 있노라면 선입감에서인지 그의 흩어진 머리카락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연상하게 한다.

화가가 초상화를 그린 것은 베토벤이 사망하기 약 8년 전으로 그 당시에는 베토벤의 간경병 증상이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의 복벽에 메두사의 머리가 형성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때이고 또 화가가 메두사의 머리가 무엇인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어떤 영감에서인지 아니면 사실 베토벤의 머리모양이 그렇게 흩어진 상태인 것을 보고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베토벤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은 빈의 병리학 박물관의 교수이며 의사인 J. 바그너 박사의 집도로 부검이 실시됐고 사인은 간경변증으로 밝혀졌다.

베토벤은 1821년 그가 51세 때 황달이 시작되어, 제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한 1824년 이듬해에는 코피와 토혈이 시작됐다. 이것은 간경변에 수반되는 합병증의 하나인 식도 정맥류의 파열에 의한 것으로 이 때는 간경변이 상당히 진행됐던 것을 의미한다. 그 후에 간 부위에 동통이 생기고 다리에 부종이 나타나며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현악 4중주곡 op.130과 132는 1825년에서 다음 해에 걸쳐 작곡된 것으로 당시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와인을 많이 마시곤 했다고 한다.

1826년에는 설사·복통이 심해지고 복수도 많이 찼으며 12월에는 감기에서 시작된 폐렴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다. 그 후 폐렴은 치유되었으나 간경변의 증상인 황달과 복수는 더 심해졌다. 12월 20일에는 처음으로 복수를 뽑기 위해 복벽에 천자술(穿刺術)이 시행됐으며 다음 해인 1827년 2월말까지 네 번이나 복수를 뽑았다고 한다.

이렇게 복수가 많이 고여서 복벽의 정맥이 불거지면 메두사의 머리 같다고 해서 이를 '메두사의 머리'로 명명한 것은 그 당시의 명의 세제리우스(1643)이었다.

간경변으로 복수가 많이 차게 되면 배꼽 주변의 정맥이 두드러지게 확장되어 불거지는데 이것은 문맥이 심하게 압박되어 간으로 흐를 혈액이 가지 못하고 옆으로 측부혈행로(側副血行路)를 만들어 이를 통해, 즉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회하여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간경변의 경우는 주로 배꼽 주위 정맥의 혈액이 둘레의 체표에 가까운 정맥으로 흐르게 되어 배꼽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불거지기 때문에 전형적인 메두사의 머리 같이 보이는 것이다.

화가 스틸러가 베토베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1820년이다. 베토벤에게 간경변증의 임상 증상이 시작되기 바로 전 해이다. 지금 몸 안에서는 간이 굳어지기 시작해 간경변의 병변이 진행되고 있을 때의 그림이다.

'메두사'는 추함과 아름다움이 엇갈리는 것과 관계되는 의학 용어인데 베토벤의 초상화 그리고 그의 사인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

카라바지오의 '메두사'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스틸러의 '베토벤의 초상화'가 떠오르고 또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고 있노라면 메두사가 떠오른다. 왜 메두사와 베토벤의 그림이 서로 연상되게 하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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