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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 향하는 참 의사 이야기

낮은 곳 향하는 참 의사 이야기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10.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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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언 원장(부산 남부민의원)

"이제 의사가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며 일침을 가하는 의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의사로서의 자존감과 내적 충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부민의원의 최충언 원장. 0.9평의 감방에서 수의 한 벌만으로도, 꽁보리밥에 반찬 3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낸 그는 세상을 향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조금은 불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산 송도 구호병원을 찾아가 <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에 이어 최근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를 출판한 최충언 원장을 만났다.

▲ 고 선우경식 선생과 함께 한 최 원장(사진 우측).
낮은 자리로만 흐르는 물처럼
최충언 원장의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먼저 1982년에 일어난 이른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최충언 원장은 짧은 지식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기에는 너무나도 지나친 고초일 법한 그 이야기를 아주 덤덤한 어조로 들려주었다. 외과의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신대 의대 81학번이 된 최충언 원장은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접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 광주항쟁 직후 대학에 들어와서 진실을 알게 됐고 진실을 밝히겠다며 학생운동을 시작했지요. 광주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지나치게 미온적이었고, 그 저변에 깔려있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하필이면 일제 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자리에 미문화원이 있었거든요. 외신에 알리기 위해 그곳을 불태우려 했죠. 그런 과정에서 인명피해도 났고, 징역살이도 하게 된 겁니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국보법에 따라 징역 7년을 선고 받았고 크리스마스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2년 남짓한 시간을 1평이 채 안 되는 독방에서 소년수로 살았다. 그리고 1982년 3월 김천 소년교도소 안에서 최기식 신부를 통해 세례를 받게 된다. 지금의 최충언 원장을 만든 것은 어쩌면 그 시절 교도소에서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 것도, 평생을 낮은 곳만 바라보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이니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의대를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의 이력은 인턴 면접에까지 따라 다녔다. 어렵사리 해동병원에 자리를 구하고 전문의자격증을 딴 후 2년 동안 외과과장을 지냈는데, 다시 IMF가 닥쳤다. 외과과장 3명 중 한 명을 퇴출시킨다기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고 자연스레 구호병원으로 흘러들어 왔다.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구호병원은 그야말로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자선병원으로, 항상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꿈꿔왔던 최충언 원장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곳이었다. 그렇게 구호병원의 외과과장으로서 본격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음만은 풍요로운 세 집 살림
"우리 아이들은 이제 어떡합니까?"

조금 큰 욕심이었을까? 2006년 7월, 후배와 함께 부산에서도 가장 가난한 달동네인 남부민동에 남부민의원을 개원하면서 구호병원의 외과과장이라는 이름을 거두었을 때 수녀들이 한 그 말은 가슴에 사무쳤다. 마리아수녀회에서 돌보고 있는 '소년의 집'에는 주로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이 머무르게 되는데 보통은 인큐베이터, 영아원, 그리고 유아원과 유치원을 거쳐 서울 응암동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다시 부산의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그 수많은 아이들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그 말을 들으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동업자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후배 덕분에 최충언 원장은 아직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구호병원을 찾아 크고 작은 수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휴일이면 어김없이 '도로시의 집'에 힘을 보탠다. 비록 빡빡하기 그지없는 세집살림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넉넉하고 풍요롭다.

"지난 해 7월부터 천주교 부산교구 직장, 노동사목의 의료팀은 주일마다 이주노동자들과 미사가 끝난 뒤에 무료진료소를 꾸려왔는데, 가톨릭센터 6층에 공간을 마련하여 평일에도 야간진료를 할 수 있도록 '도로시의 집'에 무료진료소를 열게 됐습니다."

진료소의 이름은 '가톨릭 노동자' 운동의 창시자이자 평생 가난한 이를 위해 일한 행동가이자 명상가인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에서 따왔다고 한다.

"도로시 데이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당시 도처에 환대의 집을 만들어 실업자와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입니다. 부산의 '도로시의 집'은 환대의 집과 마찬가지로 많은 소외된 분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입소문을 듣고 김해, 양산과 경주 등지에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맙게도 한의사, 치과 의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부산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까지 지인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도로시의 집'은 이를테면 서울의 '요셉의원'인 셈이다. 최충언 원장은 얼마 전 운명을 달리한 선우경식 원장과의 인상적인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도로시의 집'이 지향하는 바를 밝혔다. 2005년 영등포 쪽방촌에 자리 잡은 요셉의원을 부러 찾아가서 첫 번째 만남을 가졌고, 이듬해 봄 부산 행려자들을 위한 마리아구호소 개소식 때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진료소 '도로시의 집'에 대한 구상은 고 선우 경식 선생님이 꾸려 오신 요셉의원을 본받은 바가 큽니다. 선우 선생님과 의료의 공공성, 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대형화 문제, 쪽방동네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돈 걱정 없이 치료받는 세상을 꿈꾸며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뛰어내리는 바람에 머리를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또 욕설이나 때리지 말라는 등의 말부터 먼저 배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충언 원장이 보기에 현대판 노예나 다름이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해 다른 많은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은 최충언 원장의 필력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노동자를 위한 연대에서 발행하는 <일누리>의 '삶이 있는 풍경'에 기고한 글들이 모여 2006년 12월 <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로 발간됐으며 최근 출판사의 제의에 따라 최충언 원장의 개인 블로그인 '돌팔이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이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라는 이름으로 엮어졌다. 최충언 원장의 시선을 통해 만나는 길벗들의 이야기에는 무한한 연민과 사랑이 담겨있다. 의료사회주의라는 험악한 말로 폄하하기에는 너무나 다정하고 진솔하다.

"빈익빈 부익부로 치닫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 자명한 일인데도, 지금의 사회복지제도는 그저 알아서 하라고만 합니다. 적어도 교육받을 권리와 치료 받을 권리는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참 의료인의 모습에 괜한 부끄러움이 앞선다.

"골프의 골자도 모르고, 하물며 운전면허도 없다"는 최충언 원장이 스스로를 사회의 아웃사이더라고 칭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인다. 하지만 당신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도 살 만 하다고 고쳐 말하고 싶다.

달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부서지고 또 다시 밀려오는 삶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최충언 원장. 저서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에 소개된 머리말로 최충언 원장의 따뜻한 시선과 세상의 또 다른 희망을 가늠해본다.

환자들이 뜸한 틈을 타 가만히 진료실 창밖을 바라보면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배달할 신문을 들고 가파른 계단을 비틀거리며 오르는 벙어리 단골 환자 영대 씨, 폐지와 빈 상자를 주워 담으며 카트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 생선을 팔고 빈 고무대야를 들고 가는 할머니….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위대하고 초라할 뿐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듯이 빈곤의 덫에 걸린 가난한 이웃들이 치료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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