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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백년을 이어주는 '뿌리'
공예, 백년을 이어주는 '뿌리'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8.10.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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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영(동아의대 미생물학)

정년이 보장된 직장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60세가 넘어서도 젊은 후배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의사는 몇이나 될까.

다양한 사회활동이나 취미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심심하지 않게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길 수 있을테고, 또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한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안전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소일거리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된다면, 당장 닥치게 될 따분한 삶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서수영 교수(동아의대 미생물학)는 "의사이든 일반 직장인이든 은퇴 이후의 삶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일찍 다른 일(취미)을 배우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을정도로 실력을 키워야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충고한다. 늦게 배우면 배울수록 은퇴 이후의 삶은 괴롭다는 것.

우연한 기회에 목공일을 하기 시작해 지금은 목공동호회 활동을 비롯해 공방까지 운영하고 있는 서 교수는 아마추어들과는 달리 목공예 분야에서는 자타가 인정할 정도의 전문가로 통한다. "일찍 목공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도 바쁘게 살 것 같다"는 그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취미를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특히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목공예 작품을 보면서 즐기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도 직접 작품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비록 취미생활로 목공예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만 100년 200년동안 후손들에게 기억될 수 있으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겠단다.

미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증조부의 '반닫이'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증조부가 고종 황제의 승하로 충격을 받은 뒤 낙향해 소일거리로 한 것이 반닫이를 만드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는 증조부는 반닫이를 여러 개 만들어 자식들과 가족들에게 나눠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볼품 없는 가구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증조부가 만들어준 반닫이를 사용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나도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물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서 교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동양화수를 놓는 일을 크게 했던 것도 자신이 나무와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50여명이 수를 놓다보면 연한 나무재질로 된 수틀이 금방 닳아버려 교체를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증조부의 반닫이와 수틀을 만지작거리던 과거의 추억이 더욱 그리웠던 것은 1996년 가을 미국에서의 교환교수 생활 때문이었다. 저녁시간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목공일을 배웠는데, 과거의 추억이 목공예를 하게 한 매개가 되어준 것.

아이들에게 선물해준 '침대'

"미국이라는 곳은 저녁에 정말 할일이 없더라구요. 한국 같으면 저녁에 친구들과 소주한잔도 하고 그럴텐데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그래서 시작한 것이 TV에서 방송해주는 목공프로그램을 따라하는 거였습니다."

가구 만드는 방송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도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몇개월 방송을 보다가 장비만 있으면 할 수 있겠다 싶어 웬만한 장비를 갖춘 뒤 저녁시간을 창고에서 뚝딱거리면서 심심치 않게 보냈다. 의자·책꽂이 등을 하나씩 만들다보니 목공일이 숙달되었고, 설계도면책을 구입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때쯤 큰 연장들도 구입을 해 놓았다.

"특별히 반대를 하지 않았던 부인이 어느날 아이들 침대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설계도면책에 침대 만드는 방법이 있어서 시도는 했지만 무척 긴장했어요. 그때 만든 침대는 13년이 됐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

서 교수는 아이들이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침대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보면 증조부가 만든 반닫이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그것을 통해 증조부를 기억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뿌리'의 소중함을 가르쳐 줄 수 있어서다. 그래서 그 어떤 값비싼 가구보다 반닫이가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카페 백년가구'

미국에서 돌아온 뒤 2000년부터 포털사이트인 '다음' 카페에 목공관련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정보를 서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9평짜리 공방을 만들고 함께 작업을 했다.

당시만해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목공예 수준이 높지 않았던터라 목공예 기술을 보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03년 직접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같은 시기에 9평짜리 공방도 30평으로 넓혔고, 얼마전 80평으로 옮겼다. 그 때 만들 카페 이름은 '백년가구'(http://cafe.daum.net/woodsmith)로 지금은 알아주는 명실상부한 목공 DIY(Do It Yourself)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은 '백년가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카페'를 찾고, 실제로 공방에 모여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처음엔 함께 공방에서 작업을 했는데, 좀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작업을 하고 싶어 얼마전 지인의 도움으로 별도의 공방을 하나 마련했어요." 지금 독립해 있는 '목원공방'은 목원농원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배려가 컸다.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다보니 반쪽이공방, 쟁이공방 등 큰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CEO들을 1년동안 가르치기도 했다.

"목공예는 한 사람의 취미활동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인간관계를 좋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작은 의자라도 하나 만들어서 집에 가져가면 부인과 아이들이 좋아하고, 이웃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으니 좋지 않겠어요."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

서 교수는 성인남자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로 목공예만한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골프와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골프 등은 좋지 않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뿌리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목공예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고, 은퇴 이후의 삶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노인들의 사회적 문제도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공방이 세탁소 숫자만큼만 있어도 좋겠어요. 집에서 걸어가면 금방 나오는 공방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과제를 만들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중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목공예 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운동이고 사회운동이라고 강조하는 서 교수는 목공예는 남이 도와주는 것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해야 성취감도 두 배가 된다고 강조했다.

카페에서 '손오공'으로 통하는 서 교수는 평범한 목공이 아니라 수준높은 목공을 늘 꿈꾼다. 목공관련 서적이 1500여권이나 될 정도로 공부도 많이 했다. 최근에는 집짓는 것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 300여권을 독파했다. 집짓는 일은 대략 윤곽은 잡혀있지만 학교일도 바쁘고 하다보니 자꾸만 미뤄지게 된단다.

"목공일은 손재주만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머리를 써야 하는 고급 취미에 해당합니다. 머릿속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생각을 하고 구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가 오늘도 시간을 내어 공방에서 나무와 씨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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