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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학 30년 경험 지역주민 위해 나눌 것"
"핵의학 30년 경험 지역주민 위해 나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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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2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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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하용 (국내 유일의 '핵의학의원' 원장)

염하용 원장(부산 동구·부산PET센터 염하용핵의학의원)은 2개의 No. 1 타이틀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핵의학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이고, 미국 핵의학 전문의 국내 1호가 두 번째다.
1968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의사면허를 취득한 염 원장은 더 넓은 세계에서 공부해보겠다는 뜻을 품고 그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 미주리침례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마친 염 원장은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팍스체이스암센터에서 방사선종양학 전공의 과정에 입문했다.

▲ '염하용핵의학의원' 전경.
"방사선종양학 전공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저를 지도해 주던 독일인 방사선종양학과장이 나치 관련자로 밝혀져 도중하차하면서 중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죠."

천신만고 끝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마이켈리즈의료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공도 졸지에 핵의학으로 바꿔야 했다. 핵의학과의 30년 넘는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에서 핵의학과 초음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염 원장에게 마침 핵의학과와 방사선종양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고신대 복음병원 소식이 들려왔다. 1980년 미련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신대 복음병원은 1974년 한강이남에서는 최초로 암센터를 개설해 첨단 암 치료장비를 도입하고 유능한 의료진을 발탁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염 원장은 1980년부터 2004년 3월 핵의학의원을 개원하기 전까지 24년 동안 고신대 복음병원 암센터의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웠다. 부산 시민들이 고신대 복음병원을 암치료 잘하는 병원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에서 선진 핵의학 및 방사선종양학을 섭렵하고 돌아와 지식과 경험을 쏟아부은 염 원장의 노고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려 9년 동안 고신대 복음병원장을 맡아 병원 행정가로서의 수완도 발휘했으며, 고신대 의학부장(의과대학장)을 맡아 학생교육에도 열정을 쏟았다. 2000∼2002년에는 핵의학자로서는 가장 큰 영예인 대한핵의학회장을 맡기도 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교수생활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학교재단의 부도와 내부 갈등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규가 계속됐던 것. 급기야 진료에까지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개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정년을 불과 3년 앞둔 시점이었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개원해봐야 망할 것이 뻔한데 뭣하러 개원을 하느냐'고 만류하기도 했죠. 하지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기에 진단을 받아 조기에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죽지 않아도 될 환자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기능적·생리적 영상과 해부학적인 정확도까지 기대할 수 있는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는 물론 감마카메라·초음파장비에다 갑상선암을 치료하기 위한 I-131 동위원소(옥소) 치료병실을 설치하고 2004년 3월 용감(?)하게 염하용핵의학의원의 간판을 내걸었다. 부산지역 환자들에게 최고의 암진단을 해 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서 '부산PET센터'라는 부제도 달았다.

"핵의학 장비를 들여오고, 방사선 동위원소 저장탱크와 치료병실을 갖추기 위해 재산은 물론 퇴직금까지 몽땅 털었죠. 치료병실 2개를 운영하면서 입원환자의 식사를 위해 조리사를 채용했는데 사실 손해를 보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염 원장은 지역 암환자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큰 돈을 들여가며 서울로 가지 않고도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부산지역의 외과수술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의료수준은 결코 서울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매스컴에서 자꾸 서울 서울하니까 몰려가는 거죠. 다만, 친절문화라든가 외부에 배타적인 지역문화는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개원 이후 염 원장은 수백장에 달하는 PET-CT 영상의 판독은 물론 환자 상담까지 모두 도맡고 있다. 최고의 장비에다 30년 넘게 암을 다뤄온 염 원장의 깊이있는 눈길 앞에 환자들은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대학병원 교수들이 받는 선택진료비도 없으니 환자들의 부담이 대폭 줄었다. 더욱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환자가 제한돼 있는 PET-CT의 특성상 3∼4개월을 기다려야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문턱 높은 대학병원과는 달리 염 원장의 PET센터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미국핵의학회지에는 PET 검사를 하지 않고 혈액검사와 CT·MRI 검사로 치료계획을 세울 경우 암 종류에 따라 20∼40%에서 치료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암 발생 가족력이 있는 경우 1년에 한 번은 PET-CT 검진을 통해 암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의원급 진료비 청구액 중 전국 톱 클래스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염 원장은 "매출은 클지 모르지만 대부분 외부업체에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 동위원소 재료비가 차지하고, 인건비와 유지비를 제외하면 이익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다. 염 원장은 "개원을 하고 보니 저수가 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다"며 "최근에 막내 딸이 10년 직장생활을 접고, 의대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제부터 학비 댈 일이 걱정"이라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전국 유일의 '핵의학의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지역 사회와 의료계를 위해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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