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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혁명가 마라는 의사였다 (상)

프랑스의 혁명가 마라는 의사였다 (상)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9.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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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 작, '마라의 죽음' 1793,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박물관 소장

프랑스 혁명이 한참인 때 한 혁명 지도자가 나약한 여인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같은 혁명의 추종자였는데 혁명이 너무나 지나치게 폭력과 가혹한 살해로 치닫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즉 과격을 진정시키기고 민심의 이탈을 막기 위해 한 혁명 지도자를 살해한 것이었다. 이런 사건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 있어 그 사연과 더불어 그림의 내막과 배경을 법의학적으로 해석해 보기로 한다.

철저한 프랑스 혁명의 화가이었던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는  혁명 당시 공안위원회의 14명의 위원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는데 그는 예술가 중에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반동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법을 제안했다. 그는 혁명의 프로파간다이기도 했고 또 혁명의 순교자 초상을 그리면서 하여 혁명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다비드가 '마라의 죽음'(1793)이라는 그림을 그릴 것을 국민공회의(지금의 국회에 해당)에서 위촉받은 것은 마라라는 혁명가가 살해되는 사건이 있은 다음날인 7월 14일이었다.

그림에서 욕조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죽은 사람이 바로 혁명가였던 마라(Jean-Paul Marat)이다. 실은 마라는 유명한 의사였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마찰기전기(摩擦起電器)라는 것을 고안하여 동통이나 마비된 근육을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발육부족인 어린이들의 골아세포를 자극하는 전기치료법으로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제창하여 파리 아카데미에서 학술상을 받는 등의 의학적인 활동을 한 저명한 의사였다. 사회의 부패를 보다 못한 그가 혁명 주체세력의 한 사람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의 왼손에는 어느 여인에게서 받은 편지가, 그리고 욕조 밖으로 나와있는 그의 오른손에는 펜이 들여 있다. 그 펜으로 방금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가 탁자 위에 놓여있고 편지 위에는 당시에 화폐처럼 통용되었던 혁명 공채가 놓여있다.

고개를 옆으로 한  채 숨진 그의 가슴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보이고 여기서 흘린 피가 사방에 묻어있다. 바로 그 밑에는 그를 살해하는데 사용한 비수가 떨어져있다. 탁자에는 화가의 사인과 함께 '마라에게 다비드가'라고 쓰여져 있다.

혁명가 마라가 왜 살해되었는가를 알아보자, 1791년 5월 그는 반 혁명자 5만 명의 처형을 요구했고 그 다음해에는 20만 명의 목숨을 요구했다가 거꾸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실제로 1792년 9월에는 전국의 왕당파 3000 명이 한꺼번에 처형되는 등 혁명 반대세력에 대한 처형은 계속되었는데 마라가 바로 그 주동자였다.

이렇게 끔찍한 유혈극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참다못한 샬롯트 코르데(Charlotte Corday)라는 25세의 시골 처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코르데는 원래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왕정을 반대하고 오히려 고대 로마와 스파르타의 공화정을 꿈꾸는 공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이 열렬한 공화주의자도 자코뱅당의 급진과격주의는 반대했다. 그녀는 과격한 자코뱅당의 선동자가 바로 마라라는 것을 알고 당시 유혈극을 막기 위해서는 마라를 제거하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살해 현장에서 체포된 그녀는 "왜 마라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의 몸을 바쳤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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