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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그리고 해부학 발달(하)
체벌 그리고 해부학 발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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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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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 렘브란트 작 '니코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헤이그, 마우리츠 하우스)

▲ 그림 2 : 그림1의 강의 받는 사람의 부분 확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는 자기 나름대로의 집단 초상화를 설화적으로 묘사하여 대담한 극적 구성·강한 명암·색채의 독창성 등을 개발한 화가로 유명하다. 렘브란트는 여러 장의 해부학 강의 장면을 그렸는데 그것은 바로크시대에는 인체의 해부학적 이해도가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는 필수적인지식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의 교회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체에 대한 해부를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순수 학문적 동기에서라면 가끔 해부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시체에 손을 대는 것을 꺼렸으므로 시체의 배를 가르는 것은 신분이 천한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러던 것이 점차 해부학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는 손수 10구 이상의 시체를 직접 해부했다고 하는데,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개화된 이탈리아인 조차 그가 '마법사'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크시대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져 해부학은 마법이나 주술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건전한 교양이 된다. 렘브란트가 그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그림의 시체의 발 아래쪽에 펼쳐진 커다란 책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 유명했던 베살리우스(Vesallius)의 <해부학 교본>이다. 이 책은 당시 널리 읽혔던 교양서적이었고 웬만큼 교양적인 지식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다 해부실을 갖춰놓고 있었다. 시체를 앞에 놓고 진행하는 해부학 강의는 마치 지금의 동네 축제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관람하는 공동 행사였다고 한다. 어두운 해부실 안 해부대 위에 시체가 놓여 있는데 죽은 자의 푸르스름하고 창백한 피부색이 산 사람의 발그스레한 얼굴빛과 대조를 이룬다.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툴프 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다. 또 설명을 하는 툴프 박사의 얼굴과 치켜 올린 그의 왼손에 빛이 떨어져 손가락이 밝게 빛난다. 어둡게 그늘진 손등과 시체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로 미뤄볼 때, 빛은 아마도 화면 왼쪽 위에서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은은한 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인물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하다. 마치 혼동 속에서 사물이 솟아나듯이,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모두 어둠 속에 묻혀 있어 그 형체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결국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 하나로 만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렘브란트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해부학 강의를 하는 그림에서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툴프 박사의 강의를 듣고 있으며 시체를 보고 있다. 여기서 툴프 박사와 수강자의 눈길을 주목하면서 그림을 다시 볼 때, 툴프 박사는 자기가 지시하는 부위를 보는 것도 아니며 또 강의 받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강의하고 있다. 듣는 사람들도 앞에 있는 세 사람은 툴프 박사가 지시하는 곳을 주시하나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눈길은 제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 그림을 미술론으로 볼 때는 걸작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림 내용의 합리성으로 볼 때는 강의에서 중요시 하는 경청이나 주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림에 옮긴 강의 장면으로서는 강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눈길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어 졸속 강의의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화 속 옥에 티가 되고 있다.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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