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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감별금지법은 보이지 않는 전봇대

시론 성감별금지법은 보이지 않는 전봇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4.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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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일(의협 보험이사)

요즘 세간에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는 의료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조차 태아성감별 행위의 위헌유무라고 답할 것 같다. TV, 라디오는 물론이고 중앙지, 전문지 할 것 없이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우리는 이 법의 잠재적 피해자로써 이것이 갖고 있는 위헌요소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하고, 더불어 정부의 역할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의료법 제 19조 2항은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하여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본인, 그 가족,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고 규정하고 있다.

먼저 이 법이 갖는 법률적 위헌사항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로, 이법은 애초 법이 만들어 진 취지와 목적 등이 잘못 되었다는 점이다.

1987년에 이법이 만들어 질 당시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했고, 낙태행위도 성행했던 시절에 형법 제270조에 있는 낙태죄 처벌조항만으로 이를 해소 할 수 없기에 의료법 개정안에 이 조항을 넣은 것이다. 물론 취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적정한 성비를 유도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태아의 성감별이 여태아 낙태를 위해서 이뤄진다고 볼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법률용어로 '가정에 의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할 수 있다.

둘째는, 대한민국은 헌법이 보장하는 법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를 어겼다는 점이다.

의사의 낙태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는데도 굳이 그 사전행위에 별도의 처벌조항을 넣은 것은 양심, 도덕이나 관습 등으로 교정되지 않을 때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형법의 최후 수단성을 위배한 것이고, 낙태죄 규정이 실효성이 없다고 입법자 스스로가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모자보건법 14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낙태를 일부 허용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전 행위는 모든 경우가 불법이 된다 라든지, 개인이나 생명체에 대한 법익 침해가 심각한 낙태죄는 동의 낙태의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 하면서도, 단지 국가에 시책을 따르지 않는 정도에 불과한 태아성감별 금지 위반에 대해서는 의사 면허정지와 징역3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특히 형법 제33조에 따르면 태아성감별을 한 의사에게 진범으로 형벌을 부과할 경우라면, 그를 요청한 산모도 공범으로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만 의료법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위헌소송 건처럼 산모가 낙태를 요구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자 성감별을 했다는 빌미로 돈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직업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의 침해이다.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의 건강상태와 기형유무를 관찰하는 것은 산전 진찰 과정의 필수 사항이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어야 하며, 특히 임산부는 행복의 결실로 얻게 된 태아에 대해 의사는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모른다는 것은 알권리 실현에 위배된다.

실제 임상현장에서 산모와 가족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우리 아기 건강한가요?"라는 물음과 함께 "그런데 우리 아기 성별이 뭔가요?"이다. 즉 임신 사실과 함께 온가족이 행복한 마음으로 출산 준비도 하고, 태교를 하면서 미래의 가족을 위한 준비과정을 갖는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국가가 이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

최근 각종 언론에서 태아성감별을 허용하면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고, 그래서 태아성감별 위헌소송도 낙태와 더불어 많은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낙태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아직 이런 법은 아직 존재해야 될 거라는 막연한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처벌 없이 공공연하게 직간접적으로 성감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비는 자연성비를 회복했고 호주제 폐지 등 남녀평등 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다. 특히 낙태의 감소는 국가적, 정책적 접근으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낙태죄를 집행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지, 실효성도 없는 태아성감별 금지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의료계가 위헌소송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성의 인위적 선택을 인정받아 낙태를 합법화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 법이 지켜지지도 않고, 그런 실태를 국가에서도 알면서도 법의 집행을 철저히 했을 때 발생될 국민의 엄청난 저항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 때문에 그 의무는 회피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의사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었다.

이제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전봇대'처럼 현실적이지 않는 법과 규제를 과감히 폐기하고, 다만 지켜져야 할 법은 국가의 책임 하에 엄격히 지켜나가서 대한민국의 기본이 확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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