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6 21:21 (화)
'태아성감별' 21년만에 허용되나?
'태아성감별' 21년만에 허용되나?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8.04.11 09:5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법재판소, 의료법 위헌소원 공개변론 가져
의료계·법조계 "실효성 없는 법" 한 목소리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산모에게 알려주는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규정이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헌재는 10일 변호사 정 모씨와 산부인과 의사 노 모씨가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청구한 구 의료법 제19조의2, 2항에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을 심의하기 위한 공개변론을 갖고 찬반 입장을 들었다.

심판 대상인 의료법 조항은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한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에는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성별을 알려준 의사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이 조항이 의사의 직업수행 자유와 산모의 알권리를 가로막아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입법목적의 타당성 및 실효성, 처벌조항의 형평성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성감별=낙태' 단정은 잘못

성감별 고지를 금지한 해당 조항의 입법 목적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 조항은 성별 고지행위가 여아 낙태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만 법적 타당성이 성립 되는 것.

그러나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가 곧 낙태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막연한 개연성에 근거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청구인측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연간 34만건의 낙태가 이뤄지는데 90% 이상이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며 성별을 이유로 낙태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낙태죄의 전제가 되는 태아성감별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음주운전을 막기 위해 운전면허증 소지자에 대한 음주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청구인측 박상훈 변호사도 "낙태 방지를 위해서는 낙태죄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면 된다"며 "사전적·예비적으로 고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입법목적이 아무리 타당하다 해도 수단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비불균형 해소...입법목적 '유명무실'

남녀 성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다는 애초 입법목적 자체가 유효성을 잃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청구인측 참고인으로 나선 전종관 서울의대 교수(산부인과)는 통계청 데이터를 인용, 여아 100명당 남아의 비율은 2000년 110.1명에서 2006년 107.4명으로 떨어져 자연성비 105.8명에 근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번째 자녀의 남아 비율은 1994년 202명에서 2004년 140명, 2005년 127명, 2006년 121명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남아선호사상이 퇴색해 남녀성비가 자연성비에 거의 도달한 현재 시점에는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는 주장이다.

이에대해 정부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곽명섭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세째아이에 대한 선택 출산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으므로 법의 필요성은 아직 존재한다"고 맞섰다.

'생명윤리'냐 '행복 추구'냐

성감별 및 고지를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측의 참고인으로 나온 박상은 샘병원 의료원장은 "10%라도 남아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낙태 개연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가장 우선되야 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이라고 주장했다.

곽명섭 복지부 사무관도 "산모와 가족의 행복추구권은 태아 성별에 대한 알권리, 즉 호기심에 불과한 것인데 이를 태아의 생존권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는 "여아 낙태 현상은 남성 중심 사회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국가의 책임"이라며 "이를 산모와 의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산모와 의사의 관계는 '의료계약' 관계이므로 산모는 진찰 결과, 즉 성별을 알 권리가 있고 의사는 산모를 진찰하고 그 결과를 설명해야할 권리와 의무가 존재한다는 논리도 제기됐다.

법이 이를 방해할 경우 산모의 알권리는 물론 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까지 침해한다는 것이다.

성감별이 낙태보다 형벌 더 무거워

현행 법상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을 어긴 경우 징역 3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징역 2년 이하인 낙태죄 보다 형량이 더 무겁다.

특히 낙태죄에 대해 선고유예를 받는 경우에는 행정처분상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반면, 성감별 금지 위반으로 선고유예 판결 받은 경우에는 6월 이상의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을 받는다.

의협은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단순히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는 어떤 개인이나 생명체에 대한 법익 침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현행 처벌 규정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고인으로 나선 변호사들도 낙태가 훨씬 더 위법함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성별을 고지한 행위에 대한 처벌이 더 무거운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고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헌재, 어떤 결정 내릴까?

무려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공개변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위헌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일부 재판관은 산모의 요구에 못이겨 간접적인 방법으로 성별을 알려주고 있는 현실에 대해 수긍이 간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낙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임신 28주 이후부터는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청구인측 주장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공개변론을 참관한 장석일 의협 보험이사는 "헌재가 현행 법에 어느정도 모순이 있다고 판단할 것 같다"며 "완전한 위헌 결정은 아니더라도 의료계측 주장이 일정 정도 반영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검토한뒤 조만간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성비 불균형 해소를 목적으로 21년 전인 1987년 제정된 성감별 및 고지 금지 조항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