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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정을 찍는 사진가'
'정을 찍는 사진가'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8.04.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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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 원장 (경기 오산·성모의원)

"사진가 사진은 누가 찍어 줍니까?"
경기도의사회 정기대의원총회 행사장. 공로상을 받기 위해 조선호 원장이 무대 위에 오르자 우뢰같은 박수가 터진다. 그리고 곧이어 사회자의 한 마디로 모두들 웃음보가 터진다.
조선호 원장은 경기도 오산에 병원을 낸 개원의다. 하지만 의사 회원들 사이에서 그는 '찍사'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도 '오직 행사만 찍는 사진가'로 말이다.

"행사가 아니면 촬영은 NO"
사진과 그의 인연은 특별하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던 그가 의약분업을 계기로 처음 컴퓨터를 샀던 게 시작이다. 당시 한 대학 동아리 선배가 디지털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어 웹 게시판에 올렸던 게 좋아 보여 컴퓨터도 익힐 겸 카메라를 샀고, 그 이후로 고등학교 동창회에서부터 의료계의 크고 작은 행사에 출몰해 온 그는 어느새 유명 사진가가 됐다. 물론 혼자 플립앨범(전자앨범)을 뚝딱 만들 정도로 또래에 비해 수준급의 컴퓨터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서로서로 얼굴 익히고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겁니다. 아무래도 사진가가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잖아요. 그래서 단상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안 써요. 행사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지가 중요하죠. 어차피 단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찍으려면 사진기자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각이 안 나옵니다."

꽃이나 풍경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다는 그가 행사만 찾아 다니며 찍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저, 낯가리는 사람입니다"
누가 믿으랴. 한번 '떴다'하면 온통 정신없이 행사장을 누비며 포즈 잡아주기에 여념이 없는 그가 수줍음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진기만 잡으면 돌변한다는 조 원장, "아무래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원장에게 한 번이라도 '찍힘'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가 빼놓지 않고 써먹는 포즈가 있는데, 바로 주먹을 불끈 쥐어 어깨 높이로 올리는 '화이팅' 포즈다.

"'우리'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여러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게 되면 뭔가 같은 포즈를 취하도록 해요. 한 번은 좀 지겨운 감이 있어 옆 사람과 손을 잡는 포즈를 시도해봤는데, 그저 그렇더군요. 역동적인 포즈는 역시 '화이팅'이죠!"

당분간은 활짝 웃는 표정과 '화이팅'을 계속해야 할 모양이다.

"조선호가 하라면 해야 돼"
행사장에는 사진찍기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이러저러하게 찍어달라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을 터. 처음엔 사진기를 피해다니던 사람도 끝끝내 그에게 두손 두발 다 들고 얼굴을 맡긴다. 끝까지 촬영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팬들(?)이 지원사격을 자청한다.

"'사진 안 찍어요'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가 희끗하신 원로 선배님들이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어주십니다. '거, 조 원장이 하라면 해야 돼'라고 말이죠. 그럴 땐 기분 정말 끝내주죠. 아마 제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따라와주기 어려웠을 거에요."

그런 원로 선배들도 처음에는 영정사진 찍냐며 사진기만 들어도 노발대발 했던 분들이다. 10년 가까이 행사장을 좇아 다니며 쌓은 노하우 덕분에 이제는 "조 원장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말도 제법 듣는다. 심지어는 처음 보는 의료계 원로들도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사진 잘 보고 있다면서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 올 정도.

"사진 필요하신 분!"
조 원장의 진가는 사진을 찍을 때보다 찍고 나서부터 확실히 드러난다. 찍을 때도 공을 들이지만, 찍고 나서 들이는 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그만큼 '찍힘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가 확실하다.

"아마추어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잘 찍을 줄도 몰라요. 그래도 사진 찍으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돼서 좋습니다. 자주 만나게 되고,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담은 CD를 나눠주고……. 그 다음에는 서로 더 가깝게 느끼게 되죠."

조 원장이 지금까지 촬영한 행사 사진 CD만 200장이 넘는다. 종류로만 200장이고 보통 한 장 당 수 십장씩 복사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다 보니, 어쩔 땐 하루 5시간씩 꼬박 CD 굽기에 투자한다. 때때로 지난 사진들을 보며 얼굴을 익히곤 한다니, 쏟아붓는 정성은 보통이 아니다.

의료계 행사가 있다면 먼길 마다 않고 대구로, 서울로, 인천으로, 전국을 누비는 조 원장은 얼마 안 있으면 열릴 의협 100주년 기념 종합학술대회와 각종 기념 행사로 벌써 마음이 바쁘다.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어떻게 기록에 남길 수 있을까 고민 중이란다. 집에서는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원성이 자자하지만, 좀처럼 그만 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사진 찍는 게 말이에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세상에서 제일 재밌게 사는 법이랍니다. 이 좋은 걸 그만둘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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