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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사과학자의 길 보여주고 싶다"
"진정한 의사과학자의 길 보여주고 싶다"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8.04.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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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H 탐방기 쓴 이시훈 가천의과학대 교수(내과)

"연구는 생생한 의학교육을 촉발하고, 교육은 환자 진료를 더욱 향상시키며, 진료는 연구에 대한 단서를 제시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가면 볼 수 있는 글이다. 바야흐로 의료가 검증된 진료지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는 고전적인 임상의학의 개념에서 벗어나 의료산업화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확장된 영역에 따라 의학·의료시스템이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에 민감한 젊은 의사들이 확장된 개념에 맞는 넓어진 역할을 끌어안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시훈 가천의과학대 교수(내과)는 이런 경향을 민감히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고 있는 젊은 의사 중 하나다. 그는 일찌감치 임상보다는 연구에 뜻을 두고 생명과학과 임상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대와 미국 NIH를 3년여 동안 다녀온 후 그 경험을 본지에 기고한데 이어 최근 책 <이시훈의 동경·워싱턴 이야기>로 묶어 출간했다.

의학과 과학의 단절이 문제

"어릴 적부터 과학자 혹은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면 의대를 갈 수 없도록 한 정책에 따라 과학자를 포기하고 의대에 갔습니다." 이 교수는 이같은 탁상정책들이 한국의 의학과 과학을 단절시켜 의학을 임상이란 틀에 갇아 놓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다시 의과학자의 꿈을 지핀 것은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부터다. "허갑범 교수께서는 늘 입버릇처럼 의사가 임상만 맡던 때는 지났다"며 곧 진료하는 의사에 대한 수요만 절대적이던 경향에서 벗어나 연구와 교육이 중요시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며 처음으로 발표한 '인슐린 저항성'을 주제로 한 논문을 평하면서도 허 교수는 "임상적인 데이터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기저에 있는 분자적 기전에 대해 밝힐 수 있는 연구기법도 함께 익힌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며 의과학자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복돋아 주었다.

이 교수는 점점 연구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이왕이면 의과학의 본 고장인 미국, 그것도 NIH에서 연구해 보자는 오기가 생겨 일본 동경대에서 1년여의 연수를 마치고 도미를 결정했다.

 

합리적인 미국, 장인정신이 몸에 밴 일본

그의 2년여에 걸친 NIH 연수는 한마디로 훌륭한 경험한 아쉬움을 함께 주었다. 마이클 콴 교수를 만나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분자 기전과 동물에서의 생리학적 실험, 임상 실험 등을 두루 섭렵한 것은 훌륭한 경험이었지만 단기간에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욕심으로 막연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아쉬움과 다양한 기억들을 모두 <동경·워싱턴 이야기>에 담았다. 책에는 동경대에서 겪은 연수생활 보다 NIH에서의 경험을 주로 썼다. 미국에서 맞은 학술대회 시즌과 의학 영재 교육 시스템, 미국 국방의학전문대학원의 운영 모습, 미국의 베스트의대 선정 방식 등을 주제별로 풀어 나갔다. NIH에는 전 세계에서 의학 연구와 관련한 쟁쟁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이라크 전쟁 이후 관련 예산이 많이 깍였다는 현지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온 이 교수의 눈에 NIH는 연구의 천국 같았다. 한국의 경우는 실험기자재 하나 사는데도 적지않은 서류 작성과 절차를 거쳐야했는데 미국은 그 절차가 매우 짧고 합리적이었다. 일본의 시스템은 한국과 미국의 중간 정도에 위치했다. 일본도 좋았지만 미국은 더욱 연구하기가 편했다.

3국의 연구시스템과 환경, 분위기는 나름의 특성을 갖고 운영되고 있었다. 일본은 단숙·반복적인 실험까지 연구원들이 다하는 반면, 미국은 고용된 회사 직원들이 대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일본은 모든 실험 과정을 다 경험할 때 진정한 연구자가 배출될 수 있다는 일종의 장인 정신이 저변에 깔려 있어 보였다. 미국은 그에 비해서 연구업무들을 세분화해 연구자에게 맡길 부분과 대행 업체에 맡길 부분을 확실히 구분했다. 그런 만큼 자신의 책임과 권한 역시 확실해 필요없는 갈등을 미리 차단시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동 실험을 할 때에는 누구를 제 1저자로 올릴 것인지, 누구까지를 공동 저자로 올릴 것인지가 명확하게 정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든 일본이든 의학 관련 연구들은 의사가 주도하는 분위기가 확연하다는 공동된 특징을 갖고 있었다. 벌써 수십년전부터 양국 모두 의사연구자들을 배출하고 운영해 오면서 축적된 시스템 탓으로 이해했다.

의사 연구자들이 이학 전공자들을 제치고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 의사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학박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M.D-Ph.D(의사과학자)들의 실험과 연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이학 박사들을 능가한다. 훌륭한 연구, 실험 능력을 갖추고 거기다 임상의로서의 경험과 지식까지 축적돼 있으니 연구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도 의사과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이들이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경대와 NIH를 다녀온 것도 암당뇨센터를 짓고 있는 가천의과학대에 둥지를 튼 것도 모두 의사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뤄기 위해서였다. "아직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한 길은 명확하지 않고 때때로 길을 잃기도 합니다.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도 혹시 훌륭한 의사과학자가 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기도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책을 내고 임상과 기초연구를 연결하는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밝히는 것은 우리 의료계가 의사과학자를 만드는 것에 좀더 관심을 갖고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의사과학자의 길을 개척해 보겠다는 이시훈 교수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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