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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허위청구 요양기관 공개 '위헌' 소지"
시론 "허위청구 요양기관 공개 '위헌' 소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3.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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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권(법무법인 이지)

지난 달 26일 허위청구로 행정처분을 받은 의료기관의 명단을 공개토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을 받은 요양기관이 ②관련 서류를 위조·변조의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허위청구한 경우 ③허위청구한 금액이 1천500만원 이상이거나, 요양급여비용총액 중 허위로 청구한 금액의 비율이 100분의 20이상인 경우 ④건강보험공표심의위원회의 심의와 보건복지부장관의 재심의를 거친 후 ⑤그 위반행위의 동기, 정도, 횟수 및 결과 등을 고려하여 ⑥그 위반행위, 처분내용, 해당 요양기관의 명칭·주소 및 대표자 성명, 그 밖에 다른 요양기관과의 구별에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공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의료기관의 허위청구로 인해 건강보험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는 현실인식 아래 이를 근절해보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와 심평원에 따르면 동일한 환자 명단을 이용하여 여러 의료기관들이 환자를 실제 진료한 사실이 없음에도 진료를 한 것으로 꾸며 청구를 하는 등 지난 한해 동안 현지실사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허위청구를 적발했다고 한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할 분들은 드물 것이다. '낮은 수가체제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실 분들도 적을 것이다. '의사들은 모르는 일이며 사무장이 알아서 다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짚어 보아야 할 점은 있다.  허위청구를 근절하기 위하여 '의료기관의 명단공개'라는 극약처방을 도입해야만 하는 것인가? 허위청구가 의료기관의 명칭과 대표자의 성명을 공개해야 할 만큼 중대하고 사회적 해악이 큰 범죄인가?

해묵은 논란이기는 하지만 과거에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2003년 헌법재판소 판결(2002헌가14)이 그것이다. 이 판결은 청소년 성매수자에 대하여 명단을 공개하도록 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되는가에 대한 판단내용을 담고 있는데, 당시 법조계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됐었다. 청소년 성매수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헌법에 규정된 이중처벌금지 원칙·과잉금지 원칙·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또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지, 신상공개의 시기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이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이 법률적인 논쟁거리였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4인이 합헌 의견을, 5인이 위헌의견을 내어 위헌판결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다수의견이 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즉 청소년 성매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현대판 주홍글씨'를 연상케 할 정도로 범죄인의 인격권을 해하고, 다른 범죄인과 비교할 때 평등권도 침해하며,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성보호법 외에 관세법, 국세기본법, 지방세법 등 조세관련법령에서도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명단공개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위반자들에 대한 신상공개가 헌법에 위반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구나 청소년 성매수자나 고액 또는 상습적인 세금체납자와 허위청구를 한 의료기관을 동일시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의료기관의 명칭은 물론 주소, 대표자 성명 외 다른 의료기관과 구별할 수 있는 사항까지 공개하려는 개정법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개정법의 문제점을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허위청구의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상공개의 구성요건으로 허위청구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신상공개의 요건으로 허위청구의 금액이 1500만원을 넘거나 허위청구비율이 20% 넘을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어떠한 실제적인 조사와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만일 충분한 실사와 검토가 없었다면 자의적인 규정이 될 것이고 이는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셋째, 요양기관의 명칭은 물론 대표자의 성명이나 다른 의료기관과 구별할 수 있는 사항까지 공개하도록 한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다분하다. 넷째, 행위 유형을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한 경우로 삼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용어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적으로 살펴보면 위조나 변조는 작성권한이 없는 자가 남의 명의를 몰래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요양기관이 허위청구를 할 경우에는 허위로 작성을 하는 것이지 작성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위조나 변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알고서 입법을 하였다면 신상공개의 범위를 상당히 제한적으로 하려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으나, 의도적으로 허위청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제외시키려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의료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령·시행규칙의 개정이나 제도의 운영에 의료계의 입장과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대처법이라 생각한다. 허위청구에 대한 자정노력과 함께 의료계의 실질적인 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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