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면 빚이나 갚고 죽어"
"죽으려면 빚이나 갚고 죽어"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8.02.29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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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일년 전 의료계 사상 최초로 등장한 섬뜩한 단어. 그 주인공인 좌훈정 투사(현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가 거사 당일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죽으려면 빚이나 갚고 죽어."

서울 동대문구의사회 담당인 기자가 올해 정기총회 후 이어진 식사 장소에서 들은 비화다. 이 자리에는 동대문구 터줏대감인 경만호 전 서울시의사회장과 동대문구의사회 유태욱 회장·이태연 총무이사, 그리고 당사자인 좌훈정 이사 등이 한 데 모여 있었다.

지난 2007년 2월 6일 오후 4시 과천정부종합청사 앞 운동장. 의협 주최로 의료법 전면개정을 반대하는 시위 도중 좌훈정 당시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가 메스로 배를 긋는 할복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강남성모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았다.

덕분에(?) 그날의 시위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결과적으로 의료법 개악 법률안은 폐기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병원에 온 좌훈정 이사의 아내는 응급실 베드에 누워 신음하던 남편의 머리를 두번 치며 "죽으려면 빚이나 갚고 죽어"라고 외치며 절규했단다.

놀란 마음은 알겠는데 왜 하필 그 말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빚이 얼마나 되시냐'고 물었다. "그때도 5억, 지금도 5억"이라는 좌 이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기자는 최근 '개원의 정석'이라는 집중취재 기사를 작성하면서 힘든 개원가의 현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수도권에 개원하려면 5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적어도 3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야 한다. 개원의는 첫걸음부터 빚쟁이가 되는 게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주소다.

조금 심난했던 찰나에 옆자리의 이태연 총무이사가 소주잔을 건넸다. 하루에 120명의 환자를 보면서도 6억원의 빚을 안고 사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따라주는 술이라 맛이 유난히 썼다.

그는 "입원실 두고 직원들 월급 주려면 5억원 정도 빚은 기본"이라며 "몇년째 이자만 갚고 있다"고 했다.

최근 라면값도 오르고 기름값도 오르고, 정말 수가만 빼놓고 다 오른다. 개원가에 봄은 언제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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