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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기형아라도 ∼살 권리는 있다

선천성 기형아라도 ∼살 권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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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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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심장소아과)

보건복지부 선천성 기형과 유전질환 유전체 연구센터장·질병관리본부 희귀난치성질환 센터장·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전문의 그리고 국내 최초의 직선제 여성의대학장을 지낸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수식어를 뒤로 하고 그저 의술로 아니 의술을 넘어선 의지를 통해 생명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애쓰는 박인숙 교수. "출생도 하기 전에 태아의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게 된 기술력의 진보에 비해 생명에 대한 가치관의 수준은 너무나 못 미치는 실정"이라 토로하는 큰 목소리에서, 와일드한 말투와 빠른 걸음에서 의료계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 잡은 한 여성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 박인숙 교수의 도움으로 새생명을 얻은 환우들과 함께.
선천성 기형아 돕는 정기 음악회
만약 자기 뱃속에 들어있는 아기에게 기형이 의심된다면 부모로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태아의 인권은 생명을 부여한 부모의 것인가. 아니면 태아의 것인가. 낙태. 특히 선천성 기형에 대한 낙태는 누구도 섣불리 손댈 수 없는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하다. 쉬쉬해오며 방치되던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뜻을 모아 2004년 4월에 산전 진단으로 기형이 발견됐을 때 의학적 판단을 자문해주는 대한선천성 기형포럼(www.kbdf.or.kr)을 발족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박인숙 교수는 더 이상 선천성 기형아의 낙태는 두고 볼 일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수많은 선천성 기형아가 완쾌되거나 생명에 별다른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죠. 무지로 인해 수많은 태아들이 죽거나 버려지고 있는데,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첨단기술의 발전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 생명을 연장시켜줄 것으로 생각됐고 이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경우가 바로 태아심장초음파검사를 포함한 각종 기형아 검사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잘못 열어본 상황처럼, 초음파기기의 경이로운 발달은 태아의 얼굴이나 심장을 직접 들여다보듯 3차원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반면, 올바른 윤리관의 정립과 법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고 태아에게 심각한 재앙을 초래합니다."

낙태에 반대하고 선천성 기형아들의 존엄성에 손을 들어주며, 박 교수는 자선음악회를 기획했다. 2004년 10월 제1회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시작으로, 매년 한번씩 자선음악회를 개최해 후원금을 통해 선천성 기형아 혹은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을 도왔다. 지난 2008년 1월에도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후원 새해맞이 희망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다.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와 가족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2001년에 설립된 사회복지 단체이다. 현재 60여 개의 환자 모임이 가입되어 환자들의 복지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 단체의 후원에 많은 도움과 위안을 받고 있다.

피아노 치는 교수의 은근한 오기
음악회에서 박인숙 교수는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다. 피아노 치는 실력은 경기여고 시절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음대에 갈까를 고민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박 교수는 의료진을 꾸려 서울아산합주단을 이끌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연주회를 진행해왔고, 그렇게 자선음악회가 시작됐다. 박 교수는 정기적인 자선음악회를 통해 수익금 전액을 후원하는 활동 외에도 2001년에는 자비로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책을 펴내고 인세를 한국심장재단에 기부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생명의 환희-출생 전 진단을 둘러싸고'라는 책을 엮어 생명의 가치를 강조했다. '선천성 심장병'은 소아과 의사는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도 필독서가 됐다고.

"막무가내로 아기를 지우겠다는 산모들 때문에 황당한 일도 많았고 당신이 키울 거냐며 멱살잡이를 당한 적도 많았죠. 하지만 제가 의사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고, 끝내는 기형아 낙태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도 진보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은근한 오기가 느껴지는 박 교수의 말에서 여성의, 나아가 어머니의 새로운 면모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회를 고치는 대의(大醫) 많아지길
박인숙 교수는 1973년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베일러 의대에서 소아심장과 조교수로 근무한 뒤 198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재직 중이던 2004년 1월 울산의대 학장선거에서 61.4%의 높은 지지율로 국내 첫 여성 의대 학장이 됐다. 임명이 아닌 선출이 되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욱 클 터. "뒤에서 불평만 하다 은퇴하면 창피할 것 같아" 출마했지만 예상을 뒤엎는 득표수에 다시 한 번 사회를 고쳐보겠다는 의지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병만 고치는 의사는 소의(小醫)이고, 사람을 고치는 의사는 중의(中醫)이며, 사회를 고치는 의사는 대의(大醫)"라는 박인숙 교수는 다분히 사회 참여적이다. 대학에서 대의까지는 못 되더라고 중의적 소양은 길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런 박 교수가 지난 1월에는 선교 및 의료봉사 활동을 위해 멀리 캄보디아까지 다녀왔다.

"캄보디아에서 젊은 의사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열정을 느꼈어요. 아직도 세상의 빛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며 감탄했죠. 그렇게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에도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고."

소외 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지속적인 사회 참여를 유도하느라 박 교수에게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기만 하다. 

"그저 사회를 고치는 의사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는 박인숙 교수와의 인터뷰. 의료계의 중심에 선 여의사로서, 교육의 중심에 선 피아노 치는 학장으로서, 낙태를 반대하는 어머니로서의 당당함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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