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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년차를 맞이하며
신입년차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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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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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호(부산의료원 가정의학과 R3)

지난주 경주로 입국 MT를 다녀왔다. 3월부터 일할 신입년차와의 상견례를 겸한 의국 단합대회였다.

저녁 술자리에서는 올 한해 큰 문제없이 의국생활 해나가자며 건배도 했다. 신입년차들은 윗년차와 과장님들이 아직 어려운지  쭈뼛쭈뼛한 모습이었다. 잔을 부딪치면 무조건 '원샷'. 모르는 게 많으니 많은 걸 가르쳐 달라고 할 땐 귀엽기도 하다. 한 잔 드신 신입년차는 의국에 들어와 온몸을 불살라 일하겠다고 과잉 충성을 맹세해 술자리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때 문득 2년 전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있던 필자를 떠올려 봤다. 레지던트로서 의국생활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던 시기였다. 의사로서 내 한 몸 지탱할 수 있는 지식과 술기를 익히고자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신입년차의 모습을 보면서 익숙해져버린 일상에 젖어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 않나 뒤돌아 보기도 했다.

노숙 생활을 하던 60대 아저씨가 3달간의 복통을 참다못해 지난 봄 내원했다. 진찰·혈액검사·복부CT를 찍고 외과와 상의한 결과 '담낭암'이었고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환자를 불러 미풍이 드는 벤치에서 담당의로서 결과를 설명했다. 태연한 척 하던 환자는 다음날부터 분노를 참지못해 간호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진통제 넉넉히 주며 퇴원 조치 후 쓸쓸히 계단을 내려가던 환자의 뒷모습은 잊을 수 없다.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보이는 보호자도 많다. 평소 환자의 간병이 귀찮아 손도 대지않던 보호자가 환자가 죽음을 맞이한 후 덤덤하게 있다가 다른 보호자가 온다는 말에 심폐소생술을 다시 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상태를 설명해도 끝까지 옮기지 않고 환자가 죽기만을 바라는 보호자와 언쟁을 한 적도 많았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의국원들간의 충돌도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내 일을 다른 의국원에게 미루면 몸은 편하지만 관계는 악화되기 마련이다. 섭섭한 게 쌓여 있다가 회식이나 한 번 할라 치면 술기운을 빌려 비수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또 윗년차 입장에서 보면 아랫년차가 하는 일들이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버럭 소리부터 질렀던 순간들이 후회로 남기도 한다.

오더를 잘못 받은 간호사에게 소리친 거, 행려 환자의 입원을 지연시켰던 원무직원에게 모진 소리한 거, 명절날 시켜 먹을 곳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내려간 직원식당의 성의 없는 반찬에 죄 없는 식당아주머니에게 투정부린 거, 퇴원시킨 지 5일 만에 만취되어 피를 쏟으며 다시 찾아온 간경변 환자에게 보냈던 싸늘한 시선. 부질없지만 모든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년차 선생님들은 이런 일을 겪기도 하고 때론 나보다 더 적절히 대처하기도 할 것이다. 신입년차들이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아쉬움을 덜 남는 길을 제시해주는 윗년차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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