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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살기
느리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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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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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하나(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가톨릭 신자이다보니 매주 미사를 본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독실하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저 성격상, 직업병처럼, 늘 해야 하는 '루틴'은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나를 이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식을 치르는 한 시간 동안이 그나마 일주일을 돌아보고 차분히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성당에서는 매주 주보를 나눠 주는데, 그 주보의 한 귀퉁이엔 '느리게 살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 실린다. 1년 이상 그 글귀들을 보면서도 별 다른 감흥 없이 지내왔다. 심지어는 그 '느리게 살기'라는 제목조차도 휘리릭 빠르게 훑고 지나간 듯 하다.

'느리다'는 말의 뜻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느리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단지 '빠르다'의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느리다는 것이 모두 뒤쳐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해진 순서를 밟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거기에서 또 앞으로 나아가고 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어느 한 단계를 건너뛰거나 축소하여 빠르게 결과를 얻으면서 전진하는 것에 비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느리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말이다. 그것은 당연히 걸려야 할 시간이지, 쓸데없이 더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느림'은 오히려 당연한 느림이고 인정해주어야할 느림일 것이다.

치유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술을 하고, 또는 약을 쓰고 치료가 될 때까지는 꼭 필요한 얼마간의 시간이 있다. 봉합된 상처도 나아서 실을 제거하려면 며칠은 있어야 하고 약이 잘 들어 효과를 유지하려면 그 또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나는 그 사실을 깜빡하고선 조바심을 내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에 대해 아쉬움과 미련을 키운다. 음력 설이 지났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히 한 살을 더 먹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릿속에 들은게 많아지고 현명하게 살아갈 줄 알았더니 그건 거저 되는 게 아닌가보다. 때 되면 날아오는 고지서처럼 시간의 속도만 딱딱 맞춰서 빨라지는 느낌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속도를 좀 늦추고 나를 성숙시켜야 할텐데 아직도 냉장고 속의 덜 익은 땡감처럼 떫은 맛만 발산하며 까칠하게 살아가고 있다. 요즘들어 혼자 이런 저런 요리를 시도해보면서 아무리 조리 기구가 좋아도 음식의 맛이 들고 먹기 좋게 되려면 꼭 필요한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싫으면 그냥 팔팔 끓는 물을 붓고 몇 분만 기다리면 되는 컵라면으로 만족해야 한다. 가끔은 바쁘고 시간이 아까워 컵라면으로 때울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이제 스스로에게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적당히 맛이 깃든 식사를 대접해줘야겠다. 어떻게 보면 '느림의 미학'은 아주 소소한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그래도 지시사항을 빨리 안 챙기고 틈만 나면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하기에 여념이 없는 전공의들과 부대끼다 보면 우아하게 다짐한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니, 나는 아직도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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