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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입증책임 전환한 것 아니다"

부산지법 "입증책임 전환한 것 아니다"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8.01.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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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언론 보도 완전히 잘못 된것"
일부 언론·시민단체 아전인수 해석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진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대다수 언론은 18일 "부산지방법원이 지난 9일 의료사고시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의료진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5년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 받은 후 양쪽 다리가 마비된 환자 A씨가 병원과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재판부가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을 제외한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이 증명되면 의료사고로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언론들은 의사의 무과실 입증책임을 처음으로 부여한 판결로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도 이같은 보도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앞다퉈 발표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부여한 '의료사고구제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부산지법 재판부의 판결은 기존 의료사고 판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입증책임 완화' 취지의 판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재판에 참여한 이강호 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의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내용이 완전히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재판부의 취지와는 다르게 한 지방지에서 보도한것이 다른 언론으로 확대된 것"이라며 "마치 의사에게 무과실 책임을 지운것 처럼, 입증책임을 전환한 것처럼 잘못 보도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판결은 2000년 대법원 판례 이후 취하고 있는 과실추정의 일반 판례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 재판부 역시 대법원 판결 요지를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2000년 7월 7일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가 의사의 과실 여부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을 완화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이후 일선 재판부는 의료사고 소송에서 이같은 대법원의 취지를 판결에 반영해오고 있다.

이강원 판사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는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전환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하고 "의사 자신이 환자에게 해를 입혔다는 진료기록이 없는 이상, 의료행위 이외에 다른 원인으로 악결과가 나온게 명백하다는 반증이 없다면 의료진의 과실을 추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여전히 소송을 제기한 환자측에 입증책임이 있다"고 못박았다.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은 대다수 언론의 오보 사태와 시민단체들의 왜곡된 해석에 대해 의료계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 한 인사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이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될 뻔 했다"며 "법안이 폐기될 상황에 처하자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이 여론몰이를 위해 짜고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말했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환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는 동감한다"며 "그러나 의사의 입증책임 의무를 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소송의 원칙에 반하며 형평에도 어긋나므로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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