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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가보셨습니까?

법정에 가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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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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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옥(경남 진주·권현옥산부인과)

어제 난생 처음 법원에 가 보았다.
석달 전에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환자를 보게 되었는데 미성년자(10살, 12살 어린소녀)였다. 아버지한테 오랫동안 성폭행을 당해서 왔는데, 진찰소견상 처녀막 파열은 없었지만 질과 외음부손상이 확실했기에 지속적인 자극을 의심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폭행 증거는 없었지만 치료를 하고 나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큰 아이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였다.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아 대학병원에 의뢰한 뒤 그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한 달 전 법원에서 증인소환장을 받았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 갈 수 없다고 서면 답변했다. 이유는 우선 진료시간 중이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직접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법원에 설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세 번째로는 가해자(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할 정도라면 만일의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후 또다시 증인소환장을 받게 돼 직접 검사와 통화하게 됐다. 검사의 말이, 증거가 없어 의사의 진료소견만이 유일하므로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진료한 의사가 한 번은 나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2주간의 고민 끝에 가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친구의 충고가 큰 영향을 끼쳤다. 두 어린이가 당한 고통을 이웃에 호소했을 때 증거가 없다고 무시해 버린다면 아버지한테 받은 고통만큼이나 이웃에 대한 배신감으로 두 번 고통받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야 어떻든 주위 어른들이 최선을 다해서 그 아이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의사이기에 보복 혹은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 "정의를 추구하다 얻은 상처는 훈장으로 여겨줄 수 있다"는 남편의 격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법원에 가는 날 오전에는 걱정 때문에 진료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점심마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법정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의사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충만감 때문에 씩씩하기만 했다. 멀게만 느꼈던 법정이어서 두려워한 것이지 막상 증인으로 나서 보니 마치 수술대 앞에 서는 느낌이었고, 또 수술에 몰입해 버리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까지 꼭 같았다. 이제부터는 증인소환이 필요하다면 의사로서 기꺼이 갈 것이다. 혹시 증인소환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가길 권하고 싶다. 고민하고 피하려는 것보다 직접 부딪치는 쪽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당황했던 점은 증인석과 가해자의 자리가 너무 가까워 가해자의 증오의 시선을 계속 받는 것 같아 안절부절했던 것인데, 증인석의 자리를 가해자가 안 보이는 곳이나 화상으로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의사들이 성폭행사건을 기피하지 않고 법정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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