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1:38 (금)
시론 잔여 검체를 연구용으로 활용하자

시론 잔여 검체를 연구용으로 활용하자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11.21 09:4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기관검체은행 설립 필요성과 관련해서

▲ 한경자(가톨릭의대 교수 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최근 몇년 동안 보건의료 분야 연구가 활발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연구는 많은 경우에서 환자의 혈액·소변·뇌 척수액·기타 체액 등의 검체를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담당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연구를 위한 검체를 채취해야 한다.

 하지만 동의를 얻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도의적으로도 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수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적인 실정이다. 그나마 의사들은 어려워도 환자 검체를 이용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나 다른 생명과학 연구자나 업계 연구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인체 검체에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새로 약이나 장비를 개발하거나 인허가를 위해서도 충분한 수의 검체를 이용한 결과가 필요하며,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은 노르웨이나 영국과 같이 대단위 공적 검체은행이 있는 국가에서 임상 실험을 우선 수행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질 높은 검체은행이 필요하다.

 현재 각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는 환자의 모든 검체들이 모이는데, 하루에도 수만개 이상의 검체가 검사 후 충분한 양이 남는다. 이들은 재검에 대비하여 검사 후 일정기간 동안 냉장고에 보관됐다가 폐기된다. 잔여 검체는 연구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연결되어있는 가치 있는 검체이면서도 환자들로부터 검사 후 잔여 검체 사용에 대한 동의서를 쉽게 받을 수 있고, 개인 식별 정보를 떼고 나면 윤리적인 제한점이 적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충분한 수의 중요 검체의 확보·공급이 가능하게 되어 현재의 의학 연구는 물론 미래 새로운 약제의 개발, 진단법 개발 등 연구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검체를 관리하는 것은 진단검사의학과인데, 타 연구자의 연구를 위한 시료 공급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 실정이긴 하지만 전문의들의 노력과 공간·시설·인력·재원이 투자가 된다면 가능할 수 있다. 잔여 검체를 국내 모든 연구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게 하면 그 효과는 가히 폭발적일 것이다.

 검체은행이 설립되고 운영되기까지는 많은 구체적 사항들이 규정되어야 하고 초기에는 많은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관리와 질 보증 면에서 어느 한 장소에 중앙화하여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전국에 지소를 두고 운영하는 방안도 있으나 결국 검체 이용시점에서 다시 운송문제가 생기고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질 보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참가 병원은 검체의 질만 보증하면 가능한한 여러 병원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적 분포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보관 대상 검체의 경우 연구자들마다 원하는 검체의 종류와 상태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생명공학을 포함하는 분자유전 계통의 연구자들은 분리된 DNA나 RNA 등 핵산이나 혈구세포들을, 단백질 연구자들은 혈장을, 기타 임상 연구자들은 혈청을 이용하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파악된다. 보관 규모는 최소 10만개 이상을 포함해야 다기관 검체은행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 정상 검체는 국내 참고치 설정은 물론 각종 연구 목적의 검체 이용 시에 대조군이 요구되기 때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검체의 종류와 조건, 검체 수는 은행의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검사 후 잔여 검체 사용의 윤리적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 검체은행은 수고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고도의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면 아예 설립 자체가 불가능할 뿐더러 결국은 연구자들이 각자 검체를 확보해야만 해 더 큰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은행에 보관되는 검체들이 식별 불능화시킨 상태이고 공익 증대 차원에서 IRB의 심사를 통과한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한다면, 동의서 면제 규정 적용 등 가능한 최저 수준의 윤리적 요구 사항이 적용되길 기대하며 복지부 등 국가 기관의 별도 규정을 적용해주는 방법이 바람직하겠다.

 이밖에도 기술적으로 어떻게 검체은행을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높은 질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수의 검체가 입고될수 있도록 검체운송망·보관방법·정도관리 방법 등을 정해야한다. 그 레벨은 투입되는 재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사용료는 검체은행에 검체를 보관 불출하기까지 실제 소요되는 실비를 충당할 만큼으로 하되, 국가 보조가 있는 경우 더 낮츨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불출 요구를 막기 위해서는 무료이용은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소속과 검체은행에 검체 기여 여부, 불출 방법 등에 따라 사용료를 차등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든 출납은 매년 엄격한 감사를 받도록 하고 윤리적 문제의 이유로 수익이 남지 않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 불출 의뢰 및 내역 등의 정보와 모든 보관 내역은 웹상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기관 검체은행은 초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서두에 언급한대로 공적 검체 은행의 후발주자인 우리가 앞서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검체은행이 이상적으로 설립 운영될 수 있도록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