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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서 좋은 사람, 허경룡 원장

생각나서 좋은 사람, 허경룡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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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1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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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대전 둔산종합검진센터 상담원장)

"아빠 선생님도 되고, 아빠 친구도 되는 원장님?" 이 말은 20년전 당시 다섯살난 아들녀석이 허원장을 두고 했던 말이다. 그렇다. 허 원장은 나의 독강 선생님이며, 주치의였고, 대학 졸업동기생이며, 6년 아래의 후배이다.


1981년 봄으로 기억한다. 그는 개원하기 위해 학동에 병원자리로 쓸 공간을 2층 건물의 1층에 마련하고 2층은 살림집으로 썼다. 개원 초여서 허 원장은 신경쓸 일도 많았을 테고 좁은 살림집 공간으로 집안이 복잡했을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KMA문제집을 들고 가서 첫 페이지부터 공부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진료실이나 살림집 안방을 가리지 않고 드나들며 공부를 했고, 때가 되면 원장과 함께 밥을 먹었고, 사모님은 커피도 타주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닌 의과대학 수학연한 6년 동안이나 나는 체면도 염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허원장은 한 번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나를 맞아주었고,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성심성의껏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도 KMA에 불합격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필자의 책임이요, 1987년 2월 국가시험에 합격한 것은 오로지 허 원장의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사면허증을 들고 나는 맨 먼저 허 원장에게 달려가 보여주었다.


인턴을 수련하고 전공의 과정을 밟던 도중 대전에서 나는 개원을 하게 되었다. 허 원장은 자주 쓰이는 약품 목록과 자주 접하는 질환별로 낱낱이 진단·처방·치료 방법과 주의사항을 사례에 따라 구체적으로 적은 노트를 보내주었고, 직접 대전 진료실까지 사모님과 함께 방문하여 거액의 금일봉까지 주고 갔다. 그래서 허 원장은 나의 스승이고, 경제적인 후원자였으며, 외롭고 쓸쓸할 때 항상 나를 붙들어주는 선한 사마리안이었다.


허 원장은 동서고전을 중심으로 한 독서삼매경에서 벗어나 바둑을 두었고, 바둑에 탐닉하지 않고 낚시에 몰두하다가, 낚시터에서 볼링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살생에 대한 죄의식을 씻어냈다. 1994년에는 <볼링완성>이라는 책을 엮어 출판했으나, 볼링에 집착하지 않고 오쇼 라즈니쉬의 책
<궁극의 자유>를 번역하여 황금의꽃 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번역, 산책과 디카 사진 그리고 인터넷 음악을 즐기고,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에 심취한 상태이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취미 생활 변화를 '허 원장의 인생변주곡'이라고 명명했다.
허 원장의 산책길에 있는 나무를 보자. 나무들은 때로 훌훌 벗어버리고 산다. 빈 몸, 빈 가지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나무들은 보여준다. 허 원장이 만져보는 나뭇잎에는 신의 지문처럼 잎맥이 분지되어 있다.


샘물이 말라버리지 않는 것은 그 밑에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명상이라는 지하수를 우리는 필요로 한다. 그것으로 생활의 동력을 얻기 때문에. 명상이란 종교에서 형식적인 의례를 빼고, 철학에서 논리적 사유를 배제하고, 예술에서 수식적 기교를 버리고 남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명상을 통해 매 순간 기적을 체험하는지도 모른다.


오쇼 라즈니쉬의 말에 의하면, 선(禪)은 모든 미망(迷妄)과 속박으로부터의 순간적인 도약이다. 장애는 스스로가 자아속에 갇혀 괴로워하고 벗어나려는 실재하지 않는 벽일 뿐이므로 한순간 마음의 본성을 깨달으면 모든 장애가 없어진다. 생물로서의 인간속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깨워 거듭나고, 깨닫고 도를 얻는 과정이 바로 명상이라고 한다.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국가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했으며, 소아과 전문의로 의과대학 강단에 섰던 허경룡 원장이 다다르게 되는 명상의 경지(境地)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생각나서 좋은 사람, 허경룡 원장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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