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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남과 북은 다르답니다"
"남과 북은 다르답니다"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7.06.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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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 개성병원장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적으로는 되는데 감정이 허락하지 않거나, 다르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어서 장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안 돼 있기 때문인지 우리에게 '다름'은 '갈등'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다르니까 충돌하고, 다르니까 화합할 수 없다는 공식 때문에 자꾸만 '다른 점'들을 똑같아지도록 강요한다.
김정용 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시혜자'라는 오류의 늪에서도 떨어져 있었으며,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겸손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김 원장이 꼽은 것은 "겸손하게 문화를 이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낙후된 의료인프라를 지원해주고 어쩌고 하는 답변보다 훨씬 본질에 다가가 있다.
김 원장은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에 설립된 병원을 맡기에 참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북측 '봉동관' 종업원과 함께 노래하고 있는 김 원장.

남-북 공동진료의 현장

그린닥터스에서 설립한 개성병원은 기다란 1층짜리 건물인데 오른쪽은 남측이, 왼쪽은 북측이 진료소를 꾸리고 있으며 두 개의 진료소는 하나의 복도로 연결돼 있다(북한에서는 북한·남한이라는 명칭은 피해야 한다).

북측과 진료를 함께 한 것은 올해 초부터다. 의사는 남·북 각각 3명씩이다. 남측은 내과·외과·치과 의사가, 북측은 내과·외과·산부인과 의사가 상주하고 있다. 환자는 남·북 합쳐 하루평균 100여명. 꽤 많은 숫자다.

개성공단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중 남측 근로자는 남측 진료소를, 북측 근로자는 북측 진료소를 이용하게끔 구분돼 있지만 이따금 상황에 따라 그 벽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밤에는 북측 의료진들이 모두 퇴근하고 없기 때문에 남측에서 북측 환자들을 봐주기도 합니다. 또 남측은 병원문을 8시 30분에 여는데, 북측은 그보다 일찍 와 있거든요. 어느날 출근해보니 북측 의료진들이 남측 환자 상처부위를 기워놓았더군요. '왜 우리환자 가져가냐'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남·북 의료진은 복도를 통해 수시로 왕래한다. 북측 환자의 X-ray를 찍어야 할 때는 남측 진료소로 오기도 하고, 북측 진료소에 약이 필요하면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기도 한다.

"올초 공동진료가 시작되기 전에는 북측 응급환자만 진료했었는데, 공동진료가 시작되면서 남·북 의료진이 함께 거주하면서 약과 진료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모니터링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통일의 중요한 발걸음이 이곳에서 작게나마 시작되고 있는 셈입니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북측은 개성시에 있는 인민병원으로, 남측은 일산백병원 등으로 긴급 후송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응급후송 절차도 까다롭다. 일산백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보통 1~2시간 정도 걸린다.

"지금까지는 후송이 늦어져서 큰 일이 벌어진 적이 없어 다행이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죠. 지금 구급차가 남·북 해서 두 대 있는데, 급할 때는 남측 구급차가 인민병원도 가고 북측 구급차가 일산백병원도 갈 수 있도록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게 관건

북측 의료진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원장은 약병을 두어 개 보여준다. '독뿌리풀가위 알약'과 '경신환'이 그 이름이다. 그는 이런 약들을 가리켜 낙후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약이 효과도 있겠지만" 정제된 약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의) 정제된 약이 반드시 낫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북측의 의료현실을 무조건 비하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건 김 원장의 중요한 가치관이다. 북측 의료진과의 사소한 '다름'이 자칫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소지를 막아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치료방법에서 그들과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져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있으면 우리는 피부조각을 일일이 가져와 하나하나 붙이지만, 북측은 자르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미세수술을 하려면 접합·봉합하기 위해 평양까지 가야 하는데 가고 오는 비용, 또 드레싱 등 술후 관리문제 등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식해 보여도 잘라내버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심전도 사진을 찍고 나서 심장병이라고 판단한 뒤 약을 처방하지만, 그들은 심장병이겠다 싶어 약을 처방합니다.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지요. 물론 과학에 근거한 치료방법이 좋은 것이겠지만, 그들에게 '이것이 좋다, 이렇게 해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냥 그들의 상황과 방법을 인정해주는 것이지요."

김 원장은 남·북 의료진이 서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북측 환자를 치료할 때도 어느 선까지만 하고 나머지 부분은 "알아서 하라"며 북측 의료진에게 맡겨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그로 인해 남북의 진료방법이 조금씩 조금씩 공유된다는 것이다.

 

'기쁨의 도시'에서 '소망의 언덕'으로

김 원장은 원래 인도 캘커타에서 아내과 함께 7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그린닥터스의 간곡한 요청으로 2005년 12월부터 개성병원을 맡았고, 인도에 있는 아내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두 아들과는 흩어져서 생활하게 됐다. 무료로 진료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비는 그린닥터스 및 인근 교회에서 장학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는 '기쁨의 도시'라는 뜻의 캘커타와 달리 개성은 '소망의 언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과 북이 분단의 아픔과 편견·이념을 다 잊어버리고 개성공단 안에 '새로운 희망'을 띄운 곳이 바로 개성병원이라는 의미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봉동관'에서 여자 종업원 둘이 노래를 불러줬다.

김 원장도 두어 곡을 함께 불렀다. 북측 간호사들에게서 노래를 배웠다는 김 원장은 북측 느낌을 잘 살려 노래했다. '위대한 지도자'란 대목에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함께 노래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는 이미 '소망의 언덕'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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