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자체가 봉사다"
"의료 자체가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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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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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칠곡피부과의원 김성화 원장

의료봉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냐는 질문에 '의료 자체가 봉사인데 따로 시작할 게 뭐 있느냐'고 말하는 칠곡피부과의원 김성화 원장(54). '의술이라는 재능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진료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의료 자체를 봉사로 생각하는 이였기에 한센병 전문의료기관에서 16년을, 주어진 일이니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16년간 한센병 퇴치사업을 직업으로
피부과 그것도 대도시의 피부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깔끔하고 아늑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이다. 대구에 있는 칠곡피부과의원의 첫인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화 원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30여 분.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첫인상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실습하러 온 경북의대 4학년 학생들도 이런 피부과도 있냐며 놀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대부분의 피부과의원은 미용 위주의 진료를 주로 하는데, 우리 병원은 질병치료 전문병원이거든요."   

피부과 전문의로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틈틈이 의료봉사를 해 온 분이라고 생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첫 질문에 바로 잘못 알고 왔구나 싶었다. 틈틈이 의료봉사를 한 게 아니라, 의료 행위 자체를 봉사처럼 임해온 분이었다.

김성화 원장은 1985년부터 2001년까지 한센병 전문의료기관인 가톨릭피부과의원 의무원장을 역임하며, 한센병 퇴치사업에 공헌했다. 그가 개원한 피부과가 질병치료 전문병원인 것도 당연하지 싶다.

"특별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의대에 간 것도, 피부과를 전공한 것도, 그리고 한센병 전문의가 된 것도···. 사실 모두 우연이었죠."

김 원장의 어릴 적 꿈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은행원이 되는 거였단다. 그런데 우연히 고향에서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근무해야지 했는데 또다시 우연히 고향 대구에 있는 가톨릭피부과의원으로 불려 내려오게 되었단다. 이렇게 모두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큰 대학병원 피부과장이 고향에 있는 한센병 전문병원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수락하는 게 쉬운 일일까. 순천향대병원 피부과장이었던 김성화 원장은 고향을 떠난지 불과 1년만에 본인은 우연이라고 말하는 그 제안으로 한센병 퇴치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16년···.

대구 가톨릭피부과의원 의무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한센병 관리 지도의사로 대구시와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등록환자 2천여 명을 관리했다. 한센병 및 합병증 치료로 한센병 전파를 방지하고, 한센병 환자들의 장애를 예방하고 한센장애인의 재활사업을 통한 사회복귀에 헌신했다.

16년간 외래진료 환자와 입원 환자를 합해 35만 건에 이르는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고, 230여 명에 이르는 한센병 신규환자를 발견하여 조기치료는 물론 전염원을 차단했다. 또한 경상북도 한센병 환자 다밀집 지역들을 월 4회씩 순회 이동진료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진료하고 41명의 새로운 환자를 발견하였다. 또한 한센병 계몽교육을 위해 300여 회에 이르는 강연 교육을 실시했다. 경북의대, 순천향의대, 대구가톨릭의대의 외래교수를 역임하면서 의과대학생들에게 한센병에 대한 교육에 나섰으며. 대한나학회 이사를 역임하면서 나학회 사업 및 학술활동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선을 다했어도 미안하다
"특수한 질환이라기보다 그냥 피부과 질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걸렸을지도 모르는 병이라고 생각하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지요.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미안했습니다. 피부과적인 도움은 줄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는 한센병 전문의나 전문병원이 부족해서 손발기형을 적극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죠. 안과나 정형외과 등의 협진으로 각종 합병증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최선의 진료는 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85년도 당시에는 우리나라 한센병 등록 환자 수가 2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500명으로 줄었다. 발병 환자 수가 줄은 것도 있지만 환자의 범위도 달라졌다. 예전엔 한번 한센병에 걸리면 평생 나환자라는 병명이 따라다녔는데, 지금은 완치가 가능해서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은 환자에 포함하지 않는다. 후유증만을 앓는 사람들은 한센병 등록 환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국가적인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센병환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초신경마비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정신적으로도 한센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복귀를 위한 도움도 필요하고요."

이런 이유로 김 원장은 현재 복지부 산하 사회복지법인인 「릴리회」 부회장을 맡아 한센병을 앓았던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를 돕고, 성형 등의 후유증 관련 수술을 연계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재능은 베풀어야···
"의료사각지대는 많습니다. 당장 이곳 경상북도에만도 전문병원 한번 찾아가려면 하루를 다 써야 하는 시골 벽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 목표는 그런 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개원하겠다는 결심은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벽지에 있는 개원의들을 가장 존경합니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까지 벽지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의사 분들이야말로 대단하신 분들이죠. 저도 고민해봐서 잘 압니다.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를요. 그분들이야말로 상을 받아 마땅하죠."

김 원장은 한센병 퇴치사업도 마무리가 되어가니 이제 시골 벽지에서 의료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청송교도소에서 봉사자를 구한다는 공문을 봤단다. 그리고 우선 이 일부터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벌써 4년이 되었다. 2003년 9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아침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하여 상용 의사들의 협진 하에 하루 40~80여 명의 제소자들을 진료한다. 시멘트 바닥에서 자니까 건성습진도 많고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만성피부병도 많다. 처음 갔을 땐 약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은 김 원장이 직접 몇몇 제약회사에 도움을 요청해 외용제 등의 약을 지원받고 있다.

"청송교도소는 워낙 오지라서 도와줄 의사는 나밖에 없겠다 싶어 그만두질 못하겠어요. 고맙다고 하는 제소자들도 많지만 TV에서 본 온갖 신약과 신기술들을 모두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는 제소자들도 많습니다. 너희 의료진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거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제소자들을 대할 때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그만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결국 제소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 반, 청송교도소에 근무하는 의료진들을 돕고 싶은 마음 반으로 교도소 의료봉사를 해 오고 있죠."

지면을 통해 김 원장이 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들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것에 감사해라. 그건 행운이다. 그러니 그런 재능을 돈 버는 데 사용하겠다기보다 베푼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러한 생각으로 의사가 된다면 의료 자체가 봉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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