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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20>

[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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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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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체코)의 애국 음악인들(1)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전 세계적으로 음악은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들에게는 민족의 정신과 독립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쇼팽의 음악은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에 항의혁명을 일으켰을 때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리스트도 음악을 통해 헝가리의 전통음악을 살리고 국민들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리스트의 영향을 받은 헝가리의 바르톡(Bartok)역시 민족음악을 발전시켰으며 헝가리의 혁명(1848) 영웅 코수스를 위한 작곡을 하는 등 애국 음악인이 되었다.

보헤미아는 1620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 400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았다. 그러는 동안 대도시와 학교에서는 체코의 언어와 문화가 사라질 처지에 놓여있었으나 체코의 음악인들은 자기 국민들의 전통과 애국심을 지켜주는데 중요한 몫을 했다고 한다.

19세기에 많은 보헤미아 출신의 음악인들이 활동을 하였으나 그중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인으로서 스메타나(Smetana 1824-1884)와 드보르작(Dvorak 1841-1904)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애국심이 강한 음악인으로서 체코국민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주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스메타나는 교향시 '몰다우'(Vltava), '나의 조국'(Ma Vlast) 그리고 오페라 '팔려간 신부(The Bartered Bride)'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곡가이다. 특히 6악장으로 된 나의 조국은 체코국민들에게는 애국심의 상징이 된 음악이며 체코의 유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큐브릭(Kublik)과 체코필하모니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스메타나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지배하던 보헤미아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프라하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1848년에는 리스트(Liszt)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음악학원을 설립하였다. 두 딸이 연달아 사망하자 그는 음악교육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였으며 두 딸의 짧은 인생을 추모하듯 슬프고도 짧은 음악(Piano Trio in G minor)을 작곡하였다.   

1856년 그는 스웨덴의 예테보리(Gothenburg)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실내악을 연주하고 지휘하다가 1863년에 프라하로 돌아와 체코음악을 전공하는 음악학교를 설립하였다.

1874년에 그는 이미 당시 유행하던 매독으로 귀가 먹고 있었으며 이런 상태에서 6악장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하였다. 그는 청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심한 이명이 발생하여 아주 고음의 괴음으로 "미칠 것 같다"고 친구에게 실토하였다. 1876년 그는 자서전 격인 현악 4중주(E minor)를 작곡하였는데 3악장에 고음(high E)은 자신의 그치지 않는 이명을 반영한 것이다. 스메타나는 처음으로 체코의 전통과 특성을 살려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며 그는 체코의 전설과 주제로 여러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팔려간 신부가 대표적 예이며, 그는 체코의 많은 춤곡과 멜로디를 작곡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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