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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보듬는 쉼터를 꿈꾸며…"

"노숙인 보듬는 쉼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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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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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영 동교신경정신과 원장

매주 금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서울역에 마련된 간이 무료 진료소에서 노숙인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배기영 원장. 그가 노숙인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진료를 시작한 때는 IMF 이후 노숙인들이 무려 1000명 이상 늘어난 시점으로 돌아간다. 배 원장은 "굳이 이유를 들자면 선진국이라고 해도 노숙인들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계속해서 남아 있을 사회문제인데다가 근본적으로 마음의 병이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숙인들의 정신적 쉼터
동교신경정신과 배기영 원장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서울역 노숙인진료소에서 진료를 볼 뿐만 아니라 수요일 '비전트레이닝 센터'에서 오전진료를 맡는다.

이 센터는 서울시와 협의 아래 성공회대학교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노숙인과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재활기관이다.

역사 바로 앞 가건물에 위치한 노숙인진료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역시 서울시와 성공회대가 운영하고 있는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에서 채용한 간호사 2명과 자원봉사의사, 의대생들이 모태가 되었고 상담 및 치료 활동 등 다양한 무료진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의협은 현재 300~400명의 의사들이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사회 참여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만든 전국적 조직이다.

배 원장이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노숙인들은 이제 그를 정신적인 쉼터이자 어떤 이야기든 터놓고 할 수 있는 막역한 친구라고 말한다.

그가 봉사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시절부터이다.

"대학생 때부터 기도학생회 회원이었어요. 토요일마다 주말을 이용해 고아원을 방문하고, 방학을 이용해 무의촌 진료를 했죠. 그때부터 일종의 습관 같았으니까 지금 하는 일도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군의관과 레지던트를 거쳐 개업 초기까지 시간을 내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아온 게 후회스러운 눈치다.

"인의협·건강사회 약사회·고려의대 학생회가 함께 상계동에 있는 의료센터에서 4년 동안 진료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늘 봉사라는 생각보다는 신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독실한 기독교인이거든요. 하하."

사회 전반적인 우울증 만연되기 전에 대책을
배 원장은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사회를 보는 눈 역시 남다르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한창 이슈로 떠올랐던 터, 사회문제로까지 파급된 개인의 정신병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보았다.

"반사회적인 편집증이 화를 부른 거지. 거기에다가 총기도 마음대로 소지할 수 있으니. 인구가 많고 인종이 다양한 미국 사회에서도 총기 소지는 큰 문제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적인 문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지를 금하고 있는 건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원장은 요즘 들어서 우리나라 역시 복지 수준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실정이라고 말하며 사회가 다함께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육체적인 문제보다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기 때문에 실제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은 점점 늘고 있어요. 정신과를 선택한 이유요? 글쎄…, 평생 하게 될 진료인데, 기왕이면 새로운 책 한 권씩 읽어나가듯 새로운 환자를 만나고 그들이 처한 상황,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거든요."

동교동에 터를 잡은 지도 4월 1일에 만으로 21년이 된 동교신경정신과, 아직도 환자들의 가족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환자들을 돕는 것에 열성을 보이는 배 원장의 작은 병원에는 환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IMF를 시작으로 경제난이 오고 청년 실업은 물론, 명예퇴직 등으로 인한 좌절감이나 우울증 등 불안감이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이전의 부랑아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요. 앞서 말씀드렸듯 복지국가가 되면 노숙인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는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복지 차원에서도 정신적인 문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 원장은 대다수 노숙자들이 갈수록 알코올 중독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심신을 다치고 있지만 재활시설과 이들을 치유할 의료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치료는커녕 제대로 진단도 받지 못하는 실정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애초에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의 일도 용인정신병원 고 영 선생이 하던 일을 이어 해온 것일 뿐이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배 원장. 그가 노숙인을 하나하나 회고하며 들려준 이야기에서 정말로 책 한권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며 재활과 재기를 돕는 배 원장은 알코올 중독의 가장 큰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우울증이 만연하기 전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편견 없는 눈으로 손 내밀다
"IMF 직후에 노숙인들이 천 명 이상 늘어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한계선상에 있던 주변부 적응 그룹이 갑자기 불경기를 맞아 극복을 못하고 거리로 나오게 된 겁니다.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고 사회가 책임을 느껴야 해요. 그들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일환으로 우리 다시서기센터에서는 끼니를 제공하고 치료 등을 통해 재활을 돕습니다. 그런데 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정이 뭔 줄 아세요? 바로 다시서기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계시는 임영인 신부님이 진행하시는 인문학 강좌랍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게 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내용의 인문학 강좌는 어렵지 않게 설명하기 때문에 많은 노숙인들이 흥미를 가지고 듣는데,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주는 현상이 꽤 흥미롭다는 얘기다.

배 원장은 거리 상담을 통해 진료소와 연계를 시켜주거나 재활기관에 입소를 의뢰하는 등의 활동이 세상 어디에서든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의사들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는 말 때문에 의사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의사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모두들 돕고 살려는 의지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요즘 봉사하는 의사들이 없어진다고요? 천만에요. 제 주변만 해도 무료진료는 물론 어린이들 공부방을 도와주는 등 소소하지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의사들이 참 많아요."

그저 종교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다보니 노숙인 진료를 하게 되었다는 배 원장은 어린이의약품 지원본부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서 봉사활동 참 근사하잖아요. 한번 해보고 싶은데 영어가 짧아서 못하고. 대신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을 돕고자 하는 겁니다."

또 한국 여성상담센터의 상임이사로 실질적인 업무를 맡아보고 있으며 한국소비자호원의 의료자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활발한 사회참여 덕분에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는 배 원장은 다른 많은 의료인들도 시간을 내 사회 참여적인 봉사 활동을 통해 보람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췄다.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부드러워졌으면 하는 희망이다.

배 원장은 끝으로 "노숙인은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약자"라고 말하며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로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뜻한 웃음을 건네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그의 모습에 소주잔 기울이며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건 비단 기자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거리에 내몰려진 노숙인을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기꺼이 손을 건네는 그 후덕함에,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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