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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 마인드, 수요자 마인드
공급자 마인드, 수요자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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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4.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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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복지의학팀장)

필자는 최근 '홍보전략'을 주제로 한 정부 산하 기관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때 그 기관에서 낸 보도 자료를 제시하며 '공급자 마인드'를 비판했다. 적지 않은 청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비자 중심주의, 고객 제일주의, 환자 우선주의…. 기업 병원 의원을 막론하고 수요자(소비자) 마인드를 강조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나간 기업의 경우 10~20년 전부터 이런 마인드를 직원들에게 주지시켰다.

최근에는 정부 부처에서도 '고객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현실도 그런지는 의문이다.

2007년 1월.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를 냈다. 병원 지하실에 입원실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필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지하에 입원실을 둔 병원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만 모르고 있나? 그러나 주변 사람들도 "그런 병원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복지부에 확인을 요청했다. 담당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2개의 병원이 지하에 입원실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 공무원은 "이 법안을 만드는 데 4년이 걸렸으며 그동안 병원 측의 반발이 심해 힘들게 얻어낸 성과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결과 입원실은 지하가 아니라 반 지하층에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복지부 공무원이 실사 한 번 나오지 않고 퀴퀴한 지하 입원실로 규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안 개정 작업을 하면서 공무원들은 지하 입원실로는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는 의료시장의 현실을 간과했다. 게다가 지상 층이나 다름없는 2개 병원의 '반 지하 입원실'을 지상으로 옮기는 근거를 만드는 데 4년이나 걸렸다.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아닌가?

수요자 마인드가 너무 없다. 복지부의 수요자는 바로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과 상관이 없는 정책은 의미가 없다. 그게 4년을 들였든, 40년을 들였든 그것은 복지부 공무원의 관심사일 뿐이다.

필자는 공급자 마인드의 '자화자찬 식 보도 자료'를 기자칼럼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초 필자는 암에 걸리면 진료비가 얼마나 들까를 알기 위해 대학병원 세 곳에 자료를 의뢰했다. 그 결과는 동아일보 1면과 사회면에 상세하게 보도됐다.

그 기사를 쓰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1월 복지부가 암 보장성이 강화됐다는 점을 홍보하기 위해 자료를 돌린 적이 있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건보 급여비 지출이 2년 새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암 환자가 입원할 경우 1일 평균 4만~6만 원을 부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료비 부담 때문에 힘들어하는 서민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정말 환자들이 그 돈만 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현장(대학병원)'의 데이터를 이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사 결과 환자들은 1일 평균 19만 원의 진료비를 내고 있었다. 한 병원은 1일 평균 23만 원을 부담하고 있었다. 2인실 이상 상급병상 사용료까지 포함하면 최소 43만원이 넘는, 큰 돈이었다.

기사가 나가자 복지부는 바로 해명자료를 냈다. 복지부는 기사의 근거가 된 대학병원의 자료가 '지극히' 일부병원의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낮다며 과거보다 암 진료비가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암의 보장성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됐다. 필자도 그 점에는 동의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해명은 옳지 않다.

한 독자는 "비 급여 부분이 공개되지 않아 내 진료비가 적정한지 늘 궁금했다"며 필자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 독자를 떠올릴 때마다 정부 부처의 '고객 중심주의' 표방이 헛구호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의료 소비자도 똑똑해졌다. 의사들도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혹시 나도 공급자 마인드가 아닐까?'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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