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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의 사랑 남다른 봉사
천원의 사랑 남다른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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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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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헌 소아과 의원장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의사들은 많다. 그러나 그 봉사의 실효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의사는 이제껏 없었다. 송기헌 원장(송기헌소아과의원)은 봉사활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방법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건강문제만큼은 치료받을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활동
1997년 가톨릭의대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 뒤 1999년 2월 안산에서 소아과를 개원한 송기헌 원장은 이 지역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여건을 피부로 느꼈다. 그러던 중 어느 외국인 노동자가 쓰러졌고 갈릴레아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로부터 의료지원 제안을 받게 됐다. 이 제안을 계기로 1999년 2월 인근지역 개원의들과 뜻을 모아 '안산 원곡 외국인 이주노동자 진료소'를 개설하고 대표를 맡게 됐고, 회원 의사 13명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활동했다.

그렇게 지역의사들의 사회참여 모범 사례에 들기도 하면서 왕성하게 진료소 활동을 해오던 지난 2004년, 송 원장은 문득 7년 동안의 활동에 의구심이 생겼다.

"우리가 쉬는 날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쉬어야 하지 않습니까. 쉬는 날 봉사하겠다고 나서서 그 친구들 쉬지도 못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런 활동이 자기만족에 불과한 게 아닐까. 게다가 그렇게 일회성으로 받는 진료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나 싶었어요. 환자가 평소에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한 이유로 안산 원곡 외국인 이주노동자 진료소는 '발전적'인 해체를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평일진료는 계속됐다. 꼭 필요한 진료를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고자 시작한 게 1000원 진료다. 건강보험증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1000원을 진료비로 청구한다. 무엇보다도 무료 진료라는 말이 주는 부담감을 없애고 싶었다고 한다.

"무료진료네 의료봉사네 그런 말 싫어서 원곡 외국인 이주노동자 진료소도 문 닫았는데요, 뭐. 그렇게 무료라는 말이 전제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담을 느끼는 게 당연하죠. 미안해하면서 다시 못 오더라고요. 다만 1000원이라도 돈을 내면 조금 더 편하게 느끼면서 내 병원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찾게 되잖아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진료를 받게 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이렇게 천원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내 병원이라는 주인의식과 약에 대한 신뢰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1000원의 사랑에는 또 다른 옵션이 있다. 혼자 찾아왔을 경우 진료비가 1000원이지만, 한국인 실무자들과 함께 찾아왔을 경우에는 무료다. 한국인 실무자들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서로 아끼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같이 방법적인 문제에서 여러 가지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1000원의 사랑은 원곡 외국인 이주노동자 진료소의 연장인 셈으로, 진료소 활동에 참여했던 안산 각지의 의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송 원장은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現 한국이주노동자 건강협회)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종합병원으로 후송해야 할 경우 치료비를 지원해주기 위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월 6000원씩을 부담하면 중증 환자들을 돕게 되는데 최대 400만원까지 보장된다고 한다. 1차 의료기관으로서 원내진료를 통한 조기 진단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병의 경중에 따라서 2차적인 치료까지 가능해진 것. 의사로서의 장점과 건강보험에 대한 관심이 외국인 노동자 의료공제회라는 새로운 시도를 낳았고, 공제회 활동에 대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한번은 사장이 필리핀 외국인노동자를 데리고 왔는데 폐렴 증세가 심각해지니 해고를 하더군요. 전문상담소를 찾아가보니 우심증이라고, 심장이 우측에 있는 희귀한 병이 있었던 거라. 그래서 단순한 몸살감기에도 폐렴처럼 보였던 건데, 그렇게 마음대로 해고하다니… 화가 났죠. 그리고 중증 병이라도 자기 힘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사회로 눈 돌리는 의사 많아지길
"예전에는 무의촌에만 가도 봉사였지만, 이제 새로운 화두는 이주 노동자가 아닐까 해요. 특히 안산에 있는 개원의라면 누구나 저와 같은 고민을 해봤을 겁니다. 안산 인구 60만 가운데 외국인이 4만이에요. 15명 가운데 한명이 외국인인 셈입니다."

송기헌 원장은 내국인들만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한다.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건 아니건 상관없이 돌봐야 한다는 의미다.   

"2005년에 쓰나미 피해가 꽤 컸잖아요.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어려운 곳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을 봤어요. 한국에 나와 있기 때문에 돈 쓸 곳도 많고, 돈이 쉽게 모이지 않을 텐데도 성금을 모아서 기부까지 하더군요. 사람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곁에서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우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죠."

처음 취재를 요청했을 때 다른 좋은 의사들이 많다며 쉽사리 응하지 않았던 송 원장이 인터뷰를 수락한 것은, 무엇보다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봉사활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가 에이즈에 걸렸을 때, 내국인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추방하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에요. 추방당할까봐 병을 숨기고 쉬쉬하니까…, 내국인 보호 차원의 조치가 확산을 불러일으키는 셈이죠."

송 원장은 에이즈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는 3년 취업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많은 비리를 양산시키고 그들의 노동환경을 더 불건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고용허가제에 맞추어 들어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지만, 실상 들어와서 버는 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죠. 자연히 교육이나 주거, 환경 등 어느 하나 건강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가난을 벗어나려 왔지만 악순환만 계속되는 겁니다. 국가가 책임을 가지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며, 국가적으로 노동력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물었다.

"반월 공단은 그 사람들 없으면 못 돌아가요. 가뜩이나 출산율도 줄어들고 어려운 일은 모두 마다하는 마당에, 왜 조금이라고 고마운 생각을 가지고 도와주지 못하나 모르겠어요."

송 원장은 남아 있는 대다수의 불법 체류자를 양성화 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귀화운동이나 어느 정도 수입을 보장한 후 출국시키는 등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사들이 깨어있는 사고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 하기를 희망했다.

"의사들 모두가 진보나 보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의료 환경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에 가입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노동자들도 최소한의 건강권을 추구하고 지역사회활동과 함께 하는 의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돕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는지 가늠케 하는 송 원장. 그는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에서 한 걸음 나아가 통일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영양 상태는 어떻고요. 라면 하나를 한 가족이 나눠먹는 실정인데, 그런 걸 보면 봉사단체에서 이제는 북한을 좀 봐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봉사 활동의 길을 넓히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밝힌 송 원장은 안산통일포럼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산시에서 북한의 원산시를 지명해 성금을 기탁하는 이른바 지명 기탁을 실행했으며, 의약품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활용품을 기탁했다.

3.5평 에료실에만 머물게 아니라 사회로 눈을 돌리라는 송 원장의 목소리가 더없이 건강하게 들리는 이유는,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해온 그의 활동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이나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의사회 활동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송 원장의 모습은 보편적인 의료봉사와 조금은 다를지라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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