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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과의 30년 그들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울분!
한센인들과의 30년 그들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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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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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근 이비인후과 원장

"보십시오. 문 열면 돼지우리고 문 닫으면 방입니다. 이게 사람이 살만한 환경입니까? 남들 시선이 무서워 목욕탕 한번 못 가는 사람들입니다. 목욕 시설이 없어서 겨울에는 씻지도 못합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제가 뭐가 답답해서 이런 곳의 원장 직을 맡아 이렇게 울부짖겠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온 지 50년이나 되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이런 시설이 있다면 그냥 두시겠습니까?"

 

■ 한센인들을 위한 아파트를 세우다

제23회 보령의료봉사상 일곱 번 째 수상자인 정창근 원장(72)은 안동시에 소재한 이비인후과 원장이자 '성좌원'이라는 한센인 요양원 원장이기도 하다. 의사로서 성좌원 사람들을 돌본 지는 30여 년이 되었고 원장으로 취임한지는 20년이 넘었다.

정 원장이 안동에 이비인후과를 개원(1970년)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병원으로 한센병력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다. 정 원장은 레지던트 시절 한센병력자 무료진료 경험이 있던 터라 거부감이 없었으나 그들이 돌아간 후 일반 환자들이 불편한 내색을 보였다. 찾아온 그들 또한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겠다 싶어 그들이 생활하는 성좌원으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겠다고 했다. 물론 성좌원 측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간호사들과 함께 한번에 30여 명을 진료했다. 이렇게 방문치료를 한지 몇 년 후 당시 성좌원 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성좌원 사람들이 직접 그를 찾아왔다. 성좌원을 맡아달라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정 원장과 같은 사람이 없어서였다.

"첫 달에 10만 원이 든 봉투를 주시더라고. 무료진료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데 그렇게 돈을 주시니 그대로 다 저금했지. 원장이 되니까 그보다 더 주더라고. 월급이라면서 말이야. 나야 의사라는 직업이 있는데 그런 돈이 뭐 필요하겠어."

정 원장은 그렇게 모은 돈을 성좌원 건물 증축과 여러 장비를 사는 데 기부했다. 하지만 그의 기부로는 돼지를 길러 생활하는 그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한계가 있었다. 성좌원 사람들을 축사에 붙은 냄새 나고 허름한 방이 아니라 샤워 시설이 있는 깨끗한 집에서 생활하게 해 주고 싶었던 정 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안동에 있는 요양원 시설을 방문한 장관에게 성좌원에 한번만 들러달라 부탁해서 그 열악한 환경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성좌원은 현대화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작년에 공사를 마친 성좌원은 이제 여섯 동의 아파트와 복지관, 노인정 등을 갖춘 깨끗하고 안락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직원을 구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골라서 뽑아야 할 만큼 지원자가 많다. 성좌원 아파트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와 생활하는 상근 간호사도 있다.

"성좌원의 변화된 모습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게 정 원장님이 계셔서 가능했습니다. 정 원장님은 여기 생활자들이 간청해서 추대된 분입니다. 여기 사람들의 사후 유골처리까지 걱정해주실 정도로 한센인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한센인들은 대부분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화장터로 가면 끝인 줄 알고 지내죠.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남아 있는 한센인들의 정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신 정 원장님이 사비를 들여 안동 공원묘지에 유골 100기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인터뷰를 청하기도 전에 할 얘기가 있다며 들려준 성좌원 국장의 말이다.

 

■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법률 개정을 요구

"'암 병력자'라는 말이 있습니까? 암을 앓았다고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습니까? 가족들이 암 환자를 숨깁니까? 그런데 왜 한센병은 완치되고도 '한센병력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합니까?"

한센병은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이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다. 2000년부터 우리나라도 '나병'이 아닌 '한센병'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을 '한센병환자', 완치되어 바이러스가 없는 사람을 '한센병력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둥병이나 나병보다는 훨씬 개선된 명칭이지만 완치된 사람에게까지 '병력자'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것이 정 원장의 말이다. 사실 한센병은 99.9% 바이러스를 죽이는 약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약을 1회만 복용해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위험은 사라진다.

정 원장이 한센인들을 위해 주장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한센인들의 고연령화를 고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 성좌원의 한센병력자들은 350여 명에 이른다. 소록도 국립병원에 7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으니 그 다음으로 큰 시설이다. 현재 성좌원 생활자 중 70% 이상이 70세 이상 노인이고, 50% 이상이 24시간 돌봐드려야 할 정도로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 한센시설은 장애인시설이나 노인시설만큼 인력 지원이 안 된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도 40세 이하 한센병력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하니 성좌원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센인들의 시설을 노인요양시설, 그것도 중증장애노인요양시설로 여겨 그만한 인력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전재산을 털어 부채로 설립 중단된 재활원 인수

"성좌원 국장이 나도 모르게 시온재단에 돈을 빌려줬다고 하더라고. 솔직히 그것 때문에 이사장 직을 맡기도 했어. 성좌원도 어려운데 돈을 못 받으면 어떡하겠어. 그래서 이사장 취임하자마자 성좌원 돈부터 돌려줬지."

정창근 원장은 장애인과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안동시온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성좌원에서 무임금으로 일하겠다고 했을 때 "더 잘 먹고 더 잘 입어봐야 무엇 하겠어요, 당신 맘대로 해요"라며 남편을 지지하던 아내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시온재단의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시온재단은 1979년에 설립된 안동재활원이 신축 이전하면서 변경한 명칭이다. 1998년 IMF 때 안동재활원 신축은 부도로 중단되었고, 정 원장은 자비로 부채를 청산하고 재단을 인수했다.

"아무리 부채가 많은 상황이지만 아무나 이사장으로 모셔올 수는 없었죠. 부채를 감당할 경제적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봉사정신이 우선이니까요. 정 원장님은 안동재활원 시절부터 지원을 많이 해 주셨고, 성좌원 원장으로서 봉사정신이야 안동 시민이 다 알 정도니까 직원들이 여러 번 부탁드렸죠."

'돈이 있으니 이사장을 하겠지'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까봐 걱정이라며 시온재단 김춘식 원장이 들려준 말이다.

가족처럼 아끼는 성좌원의 돈을 갚아주기 위해 부도가 난 시온재단 이사장이 되었지만 성좌원의 환경을 180도 바꾼 정 원장의 능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장애인들의 생활 특성에 맞게 방의 구조를 변경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편하도록 의자가 없는 식당을 따로 증축했으며, 불투명한 천정으로 하늘이 보이는 식당을 만들었다.

3개의 생활보호시설(성인 지체장애인 재활시설,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무의탁노인 요양시설) 과 2개의 근로시설, 재단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법인사업장을 갖춘 시온재단은 장애인의 경제적 자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 훈련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시설 생활자들을 위한 인장, 목각, 인쇄 등의 직업재활훈련프로그램뿐 아니라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발굴해서 고용한 출퇴근 작업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시온재단 6명의 원장들은 이런 생각이 정 이사장의 의지였다고 하고, 정 이사장은 '한 명의 생각이 무슨 소용이냐. 협조하고 일해주는 원장과 직원들이 있어야지'라며 서로 공을 돌린다.

확고한 의지로 자신을 지지했던 아내에게 사회복지학 공부를 권하면서 그는 말했다. 올바로 알고 해야지 동정심으로 할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제 시온재단의 상임이사로 그곳을 지키는 그녀에게 말한다. 숭고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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