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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립한의대 신설 막아야한다

시론 국립한의대 신설 막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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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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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숙(울산의대 교수·전 울산의대 학장)

현대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뉜 의료 이원화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여 의료 일원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단 한발자국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역행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가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오히려 상황은 악화일로이고 의사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고 있는 형편이다. 장차 국민 모두가  겪어야할 혼란과 피해, 경제적인 추가 부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경이다. 잘못된 결정이라면 이제라도 고치도록 조언을 하는 것이 의료인의 도리이기에 이 글을 쓴다.

정부에서 국립대학에 한의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과거 서울대를 비롯한 두어 개 국립대학에 한의대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의대 교수들이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에서 강경하게 밀어 붙이니 국립대학 여러 곳에서 서로 유치하려고 물밑경쟁이 치열한 모양이다. 그리고 요즈음 각종 언론매체가 총동원되어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여론몰이라도 하려는 듯이 연일 한의학이 만병통치인 듯한 보도를 내 보내고 있다. 또한 과학적 지식이나 내막을 알 리 없는 일반국민들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막연한 국수주의, 민족주의에 젖어 냉철한 판단 없이 한의로 몰리고 있으며 언론과 정부가 이를 적극 부추기고 있다.

과거 의료의 주류가 '양의'였다면 (양적으로만 보아서) 어느 사이 반반씩 되더니 이제는 양방, 한방의 구분조차 어려운 분야가 있는가하면 심지어는 한방이 오히려 더 우세해 보이는 분야도 생겨나고 있다. 나아가 더욱 심각하게 우려되는 점은 의료보험과 국가 연구비의 분배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몫이 날로 커지는 반면 의사들의 의료정책수립과정에서의 입지는 반대로 날로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뿐 아니라 과기부의 한방관련 연구비도 수백억에 달하여 이제는 연구에서 조차도 심각한 이원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시속 500km 이상의 고속열차를 개발하는데 우리는 달구지를 다시 꺼내 타는 꼴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의대 41개와 한의대 11개, 합해서 모두 52개의 '의과대학'이 있으며 인구대비 의대 숫자가 미국, 영국, 일본의 약 2.5배이며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학생 정원은 늘리지 않으니 한의대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무슨 큰일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학교육의 부실화, 나아가서는 불량 의사들을 배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의대 정원이 아무리 적더라도 학생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수 숫자는 입학 정원이 150명인 대학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의학지식이 날로 방대해지고 초 전문화되기 때문에 양질의 의학교육에 필요한 교수 숫자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책은 의대와 한의대의 통폐합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공식석상에서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을 만큼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와 교육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통폐합은 고사하고 하물며 한의대를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럽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의료계(한의학계 포함), 더 중요하게는 국민 모두가 받을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의대와 한의대를 단 몇 개 만이라도 통폐합하고 관련 대학들에게 국고지원과 신입생 정원보장 등 지원책을 마련해 준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의대가 탄생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중 우리나라는 의사면허증과 한의사면허증이 따로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의학과 한의학이 나무토막 자르듯이 나뉘어있기 때문에 병이 났을 때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에게 갈지 또는 전통의학을 공부한 한의사에게 갈지에 대해 온 국민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의사들이 전공과목과 무관하게 환자들로부터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한약 먹어도 되요?" 이다. 또한 특정 병에 대한 치료 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에 의사가 환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한약 먹어요?" 이다. 즉 모든 국민이 현대의학과 한방을 동시에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만족도는 낮고 또한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의료 이원화로 인한 문제들은 치료시기를 놓친다거나, 중복 치료로 의한 부작용, 개인과 국가의 의료비 중복지출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 의사들에 대한 불신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심각하다.

이와 같이 의료 일원화는 너무나 중요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해결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료인들은 의대와 한의대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의학교육이 해답임을 알고 있다. 이미 일본과 미국의 몇 개 대학에서는 침술을 비롯한 한방치료도 가르치며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시험을 거쳐서 침술면허를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미 졸업하여 진료과목이 고정된 사람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차라리 의대와 한의대를 합한 새로운 형태의 의대에서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동시에 가르치고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 전공의 수련과목을 선택할 때에 현대의학이나 한의학의 각종 과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한의학은 수술, 응급처치, 중환자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제가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 의술로 볼 수 없다. 또한 한의학의 각종 치료방법들, 특히 한약제의 성분 분석, 정량화,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의학도 현대의학과 통합하여 공동연구를 하는 길만이 살길이다. 즉 한의학도 현대의학을 보완한다는 의미의 보완의학의 일부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한다. 또한 현대의학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어쩌면 한의학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보완의학에서 찾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원래 현대의학의 치료약들도 그 근원은 식물에서 발견된 약제들이 많다. 그러므로 한약에도 분명 치료 효과를 가진 중요한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정량화, 표준화 하고 임상시험 등의 절차를 거친다면 중요한 신약개발을 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서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지금 한의대를 하나 더 신설한다는 것은 의료이원화로 인한 부조리와 비효율 등 각종 문제들을 영구히 고착시키는 잘못된 정책이다. 이와 같은 논쟁을 밥그릇 싸움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는 국민건강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의 초석일 뿐이다.

정부에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가슴이 조여 오듯이 아파오면, 아기에서 선천성 심장병이 발견되었을 때, 아이의 성장이 멈춰버리면, 그리고  유방에서 작은 혹이 만져진다면 어떤 의사에게 가겠는가? 한의사 또는 양의사(?) 또는  둘 다? 그러면 누구의 지시를 따를 것인가?  지금과 같이 환자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돈 버리면서 병 키우고, 의사집단과 한의사집단이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는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의료인 모두의 직무유기이다. 항아리가 완전히 깨진 후에 하소연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사 항아리가 깨지더라도 한 두 조각으로 깨진다면 그래도 접착제로 붙여 사용할 수 있다. 한의대 신설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항아리가 완전히 박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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