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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의협신문 송년 기자방담
의협신문 송년 기자방담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0.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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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밀레니엄 시대를 여는 2000년 한 해는 의약분업 투쟁으로 시작해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그야말로 '투쟁의 해'였습니다. 의료계 100년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의사들이 진료실을 뛰쳐나와 거리에 나서 투쟁한 전례도 없었거니와 투쟁이니 파업이니 하는 용어도 의사 사회에서는 낯설게 여겨졌기 때문에 정신적인 혼란도 적지 않았습니다. 훗날 역사학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록할지 의문입니다.

1년 내내 투쟁의 현장에서 발로 뛰어 온 여러분도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도 적지 않았을 줄 압니다.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전체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방담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지난 1년을 차분히 정리하고 반성해 보자는 의미도 있고, 취재현장의 체험담을 함께 나눔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여 보다 질 높은 신문을 만들어가자는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8월 31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의사, 학생 대동 한마당 및 의료개혁 원년 선포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비를 맞아보기는 처음입니다. 하루 종일 폭우에서 취재를 하다보니 팬티는 물론 비맞지 말라고 비닐로 감싼 취재수첩까지 흠뻑 젖어 당황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질퍽한 진흙바닥에 주저앉아 '의권쟁취!'와 '국민건강'을 목 놓아 외치던 4만여 회원들의 절규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보라매집회에 참석했던 의협 회원이라면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고,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뜨겁던 보라매 집회가 불과 100여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에서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카메라를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어야 하는 J국장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집회 행사 한 번 취재하고 나면 몸무게가 2kg 정도 빠지곤 합니다. 보라매 집회 때는 막내 C기자가 우산을 받쳐들고 열심히 사라('사랑하는 카메라'의 애칭)를 지키려 했으나 결국 폭우를 이기지 못하고 고장이 나서 진땀을 뺐습니다.
 
6월 4일 과천 청사 앞마당에서 열린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결의대회'는 의사 전면 투쟁을 알리는 선전포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회장 전경을 찍을 수 없겠냐"는 J국장의 당부에 사진팀 지원에 나섰던 K차장과 저는 과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찾아 나섰습니다.

무작정 30층짜리 코오롱 빌딩으로 들어갔죠. "정부 청사가 가까이 있어 과천 경찰서장 허락 없이는 안된다"고 버티는 수위를 협박하고 때로는 싹싹 빌며 어렵사리 취재 허가를 받아냈답니다.
 
투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은 의료계 투쟁 백서와 각종 자료로 활용되면서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오롱 빌딩에서 잡은 6.4 과천대회 사진은 광고면으로 고정 운영하던 1면에 올려짐으로써 의협신보 지면을 쇄신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의약분업과 의료계의 총력 투쟁을 취재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은 물론 의협 직원 대부분이 가정을 포기(?)할 정도로 매진했던 점은 나름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협 내부개혁의 와중에 직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도 들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보람을 잃은 몇몇 직원들이 이직을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병협은 최근 직원들이 대학원을 졸업하면 2호봉을 승급해 주도록 규정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의협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고,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0월 K국장의 편집국장 취임에 이어 편집국 J국장, K부장, O차장, 광고국 L부장 등 수년간 적체됐던 신문사와 의협 직원의 승진, 승급인사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조정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의협이 제자리를 잡으면 후속적인 인사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10월 출입처 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의협취재를 전담했던 J국장이 복지부 취재를 맡게되면서 쌍둥이 아빠 O차장이 바톤을 이어받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J국장 몸무게가 너무 빠진다는 소리가 들렸는데 가뜩이나 마른 O차장의 몸무게가 벌써부터 걱정되는군요.
 
전공의와 의대생 취재를 도맡았던 의협신보 유일한 총각 C기자도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했을 줄로 압니다. 취재 과정에서 접했던 젊은 의사들은 머지않아 의료계를 이끌고 갈 주역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많은 취재원을 만나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함께 고민한 경험들은 앞으로 취재 과정에서 적지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덟번의 호외가 발행돼 의협신보 역사상 가장 많은 호외 발행기록을 세웠습니다. 투쟁의 열기가 뜨겁게 확산되던 6월 18일부터 연속 여섯번의 속보가 호외형태로 발행됐고, 11월 16일 실시하려던 투표를 연기한다는 속보를 한 차례 더 발행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면서 6일간 연속해서 속보를 발행하느라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J차장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취재현장을 지킨 J국장의 정신력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죠.
 
모 신문방송대학원 교수에게 의료계 전문지에 대한 평가를 의뢰한 적이 있었는데 "참 특이하다"고 하더라구요. 신문을 꼼꼼히 살펴본 교수님 말씀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균형은 잡혔는데 신문의 품위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지 않냐"며 1면 광고 게재 문제를 지적하더군요.
 
오래 전부터 1면 기사화 문제가 거론돼 왔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기에는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이야 광고비로 의협신보 자체 예산을 충당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협회 지원비가 없으면 예산 편성이 어려울 정도로 재정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IMF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도 광고국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줬기에 연간 2억원이 넘는 안정적인 광고비 수익을 포기하면서 1면 기사화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0월 2일자(3450호)부터 1면에 기사가 게재되자 의료계 전문지는 물론 독자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읽히는 신문, 사랑받는 신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협신보 구성원들의 의지와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독자의 쓴소리를 담아내는 〈독자의 소리〉, 취재기자가 직접 쓰는 〈기자수첩〉,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찬반 양론을 함께 들어보는 〈동서남북〉, 의사 사회에서 공인된 마니아가 직접 쓰는 〈마니아칼럼〉을 비롯 기획연재 〈시장원리에 흔들리는 미국 의료계〉, 박경철 원장의 〈증시 엿보기〉, 이재담 교수의 〈의학사 이야기〉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K부장, L기자가 팔을 걷고 나선 〈해외뉴스〉는 독자들에게 나라밖 의료계 소식을 꼼꼼하게 챙겨주며 고정코너로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현장취재와 기사 게재 과정에서 기자들이 겪는 고충도 많은 걸로 아는데?
사회복지법인의 환자 유치 문제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의 신장 투석 문제를 다룬 보도로 법원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기사 모두 O차장이 취재, 보도했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항상 논란이 되는 기사는 늘상 소송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위축되어 기사다운 기사를 쓰지 못한다면 기자 본래의 역할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무능한 기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신문사 자체적으로 외압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역량도 필요하며 협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특히 회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변해야 하는 의협신보의 특성상 발행인인 회장과 회원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적지 않은 혼란과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5월 R주필이 사설 문제로 직위해제 조치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의협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음에도 일부 회원의 항의가 잇따르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내려진 조치였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물론 노동조합원 사이에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습니다. 기관지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하면서 언론의 자유와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편집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편집권이 보장되지 않고 흔들리는 언론의 모습을 독자들은 결코 신뢰하지 않습니다. 신뢰를 의심받는 언론은 독자들이 먼저 외면하고, 독자가 외면하는 신문은 존재의 가치가 없습니다.

최근 R주필은 〈이촌일언〉을 통해 비평의 붓을 더욱 날카롭게 세우고 있습니다. 독자의 따가운 질책은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젊은 것들은 하나 같이 늙은이 행세를 하려든다"며 틈날 때마다 젊은 기자들의 패기를 강조하는 R주필의 잔소리(?)를 들을날도 얼마남지 않았군요.
 
의약분업 투쟁을 겪으면서 의협신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아주 높아졌습니다. 신문이 하루라도 늦으면 "이번 주 신문 안 만들었냐"고 전화를 하거나 "주소가 바뀌었으니 바뀐 주소로 보내달라"는 주문도 많았고, "회원이 아닌데 의협신보를 받을 길이 없냐"는 문의도 잇따랐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기사가 나왔을 경우 이메일이나 인터넷 통신공간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무자비한(?) 반론을 펴는 것도 과거와 다른 모습입니다.

의약분업의 최대 수혜자는 인터넷 신문이라는 얘기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 투쟁 과정에서 의료계 전문지가 인터넷 신문에 밀려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이런 측면에서 나온 얘기일 것입니다. 정보화 사회와 인터넷의 위력을 절감했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의사 사회 여론은 인터넷 신문과 인쇄매체가 상호 보완적인 노력을 통해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인터넷 신문의 장점인 속보성과 저장성에다 인쇄신문의 장점인 분석이나 해설, 기획기사를 결합한다면 전문 언론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의약분업 투쟁에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 김광윤 강릉시의사회장을 비롯해 참된 의사를 꿈꾸다 유명을 달리한 회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들의 유지를 받들어 더욱 심기일전해서 보다 알찬 기획과 참신한 내용으로 의료계 여론을 선도하는 전문 언론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합시다.

내년 2월 대학 졸업 예정자로 지난 10월 입사, 화제를 뿌린 K수습기자가 3개월간의 고된 견(犬)습 생활을 마치고 대망의 2001년 1월부터 취재현장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가려운 곳을 시원스레 긁어 줄 마당발 기자로 자리잡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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