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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홍보의 장으로 이용해서야

재난을 홍보의 장으로 이용해서야

  • 이현식 기자 hslee@kma.org
  • 승인 2006.06.1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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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진으로 6천여명이 사망한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한 고위공무원이 피해지역을 방문하면서 기자회견을 열 목적으로 40여명의 기자들을 대동하고 갔다가 언론의 비난을 산 일이 있었다. 현지 영자신문인 <자카르타 포스트>는 지난 6일자 한 기고문에서 "재난을 자신의 홍보의 장으로 이용하는 파렴치한 자들에게 피해주민들이 증오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쓰나미에 이어 이번 지진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한국 의료지원단이 인술을 전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홍보에만 매달린 사례도 있었다.

지난 5일 욕야카르타 시내 한 진료소. 대한의사협회 의료지원단이 진료본부를 설치한 이곳에 방송카메라를 들이대며 떠들썩하게 몰려드는 무리에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알고 보니 국내 A대학병원의 의료지원단이었다. 이 대학병원팀은 의사 2명과 간호사 3명 등 총 10명이었는데 사내기자 1명과 일간지 기자 2명 등 취재인력 3명도 포함돼 있었다.

A대학병원팀은 출국 전부터 이곳 진료소를 인수하기로 약속을 하고 왔다. 그러나 A대학병원팀 단장은 진료소를 대충 둘러보더니 환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대뜸 이곳 대신 환자가 많은 반뚤 지역으로 가겠다고 통보했다.

현장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격분했다. A대학병원팀 단장의 태도가 마치 회사 부서 순시를 나온 사장인 것마냥 고압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A대학병원팀을 외국의료봉사단체 명단에서 빼버려야 한다며 분을 삭였다.

진료소가 위치한 곳은 한국인 사업가인 장근원 사장이 운영하는 병원 옆이었다. 지진 발생 후 그는 한국 의료지원단들이 진료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말에 현지 정부에 의료구호 장소로 등록했다. 그런데 A대학병원팀이 환자수가 적어 홍보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자 마음을 돌려버린 것이다.

장 사장은 "해도 너무 한다"며 "의료장비가 부족해 멸균기와 마취기 등을 주문해서 내일 들여오기로 했는데 헛수고한 셈"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튿날 A대학병원팀은 다시 진료소를 인계받고 싶다며 부탁해왔다. 막상 반뚤 지역에 가보고 나서야 진료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박 사장은 "절대 당신들에게는 줄 수 없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귀국 후 많은 환자를 진료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홍보가 의료봉사보다 주목적이 되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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