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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를 낚는 어부가 된 신학생!"
"봉사자를 낚는 어부가 된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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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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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초 건국의대 신경외과 교수

의사보다는 신부 같다는 말로 시작해 지난 해 의협신문 '의사칭찬릴레이'에 소개된 바 있는 건국대학병원 고영초 신경외과 교수. 30년에 가까운 의료봉사 활동으로 여전히 그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 '칭찬릴레이'를 할 뿐이었다.       

 

▶ 전진상의원은 제2의 가족

고영초 교수는 1977년부터 28년째 전진상의원에서 주말마다 진료봉사를 해 오고 있다. 전진상의원은 1975년 가톨릭 평신도 단체인 AFI에서 시흥2동 산동네에 마련한 복지관에서 시작된 자선병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지원기관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학생 때부터 인연이 닿은 곳입니다. 작년에는 추기경님을 모시고 전진상 복지관 개관 30주년 행사를 갖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배현정 원장님이 더 훌륭하신 분이에요. 배 원장님은 원래 간호사로 한국에 오셨는데, 전진상 복지관을 운영하다가 중앙의대에 편입해서 한국말까지 배워가며 졸업을 하고 전진상의원 의사가 되었죠."

전진상의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곳의 원장님을 칭찬하기에 바쁘고, 초창기 전진상의원부터 근래 전진상의원 모습까지 사진으로 보여주며 그곳에서 키우는 개의 안부까지 전한다. 이쯤 되니 그에게 전진상의원이 단순히 봉사 장소가 아니라 제2의 가족임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전진상의원에는 2명의 가정의가 상주하고 있고, 100여 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중 의사만도 각 진료과별로 70여 명이 넘는다.

"지금은 진료과별로 선생님들이 많아서 담당과만 진료하지만 초창기에는 진료과가 따로 없었죠. 전진상의원에서는 저를 '어부'라고 부릅니다. 의사 낚아오는 어부라고요. 하하하. 영등포 요셉병원도 어부 노릇을 하다가 인연을 맺게 된 겁니다."

15년 전 전진상의원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고영초 교수에게 SOS를 쳤고, 고 교수는 지인이었던 한림대 의사에게 부탁을 한다. 그런데 그 정신과 전문의가 마침 요셉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던 터라 결국 서로를 양쪽 병원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요셉병원이라면 21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인 유루시아 수녀가 행려자와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기도 하다. 반색하며 유루시아 수녀 얘기를 꺼냈더니 고영초 교수는 기자에게 유루시아 수녀가 쓴 책을 권하며 두 번째 '칭찬릴레이'를 시작했다.

 

▶ 신부보다 의사를 선택한 것에 감사한다

30년이 가까워가니 병원뿐 아니라 그 병원을 찾는 환자들과도 가족처럼 친할 수밖에 없다.

"뇌에 물이 차서 세 번이나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었는데 마침 제가 진료를 간 날 혼수상태로 실려왔어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건대병원으로 급하게 데려와서 응급수술을 했죠. 퇴원하고 얼마 후 남편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참 기쁘더라구요. 이 분 같은 경우 이사를 가고 나서도 전진상의원을 찾는 분입니다. 물론 더 이상 무료진료를 받는 건 아니죠. 무료진료는커녕 전진상의원에서 진료를 받던 분들 중 대부분은 이사를 가고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병원의 후원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또 다시 고영초 교수의 칭찬릴레이가 시작된다. 가정방문을 가는 34살의 뇌성마비 환자가 있는데, 그가 얼마 전 시집을 냈다는 것. 거의 누워지내야만 하는 사람이 그렇게 아름다운 시집을 냈다는 칭찬에 이어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거의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그의 시를 인내심을 가지고 받아 적어준 봉사자의 칭찬까지···. 그의 봉사활동 공적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성자로 보는 그 마음이 그를 더 신부처럼 보이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고영초 교수는 원래 신부가 될 사람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족 모두 그를신부감이라고 생각했고, 본인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신학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마침 예비고사가 도입되었고, 평소 사회 지도자라는 신부가 남들보다 공부를 못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싶어서 시험을 친다. 그리고 편입시험까지 치러 덜컥 서울대 의대에 합격을 한다. 그리고 의사는 신부와 가장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신부가 영적인 치료를 하는 사람이라면 의사는 육체적인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신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내 손을 통해서 치유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쁩니다. 신부보다는 의사가 되는 게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라틴어가 도움이 되어 남들보다 의과 공부가 수월했던 것도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신학교에서 받은 거란 생각이 들 정도죠."

 

▶ '내 탓이오'에서 '네 탓이오'까지

처음에 요셉병원에서 진료할 때는 전진상의원 환자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자들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전진상에 오는 환자들은 가난해도 깨끗하고 예의가 바른 분들이었지만, 요셉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냄새도 고약하고 고성방가와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성의껏 진료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대충대충 진찰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성서의 한 구절이 생각나더라구요."

그 구절이란 '너희가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내게 해 준 것이다, 또한 너희가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내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단다. 한참 진료하기 힘들 때 이 구절을 떠올리고 고영초 교수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환자 한 명 한 명이 그를 찾은 예수라고 말이다. 그 후부터는 환자들을 제대로 검사하고 세심하게 돌봤다. 그랬더니 전에 나던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단다.

그는 의사가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고 신경외과를 전공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라 믿는다. 원래 내과를 지원하려 했으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고 신경외과를 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4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셨어요. 10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계셨고, 저는 신경외과 병동에서 학교를 다녔죠. 돌아가시는 게 기정사실화 되고 나니까 '아버지는 내가 신경외과를 전공하길 바라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경외과 교수님들이 권하셔도 절대 싫다고 했었는데 아버지의 뜻이라 믿고 신경외과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후회한 적 없습니다. 작년에는 84세 되신 어머니를 직접 수술해드렸죠. 어머니를 수술해 드릴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에서 '내 탓이오'를 강조하지만 고영초 교수는 좋은 일은 모두 '네 탓이오'라 말한다. 54세, 아직 젊은 나이지만 돌아보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 참 많다는 그는 작년 30주년 개관 기념식을 가진 전진상의원의 60주년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지금의 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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