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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0:40 (금)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6.05.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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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아동복지회 홀트의원 김태경 원장

그를 만나기 전 최진실이 주연했던 영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이 떠올랐다. 90년대 초반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입양 문제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입양된 한 여인의 삶은 심금을 울렸고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친모와의 상봉 장면은 눈물을 쏙 빼놓게 했다.

해외입양이 '활성화'된 것을 두고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으로 비판하던 시절이었다. 못 살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살 만큼 살게 됐는데도 여전히 "해외로 아이를 대거 '수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해외입양은 수수료가 쏠쏠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서릿발처럼 차다.

사회가 버려진 아이들을 껴안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버려진 아이들을 무턱대로 한 곳에 몰아놓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년이 넘도록 홀트의원에 몸담아 온 김태경 원장은 아이들이 온전한 가정 속에 편입될 수 있도록 아이들의 건강을 돌봐왔다.

'아기 수출을 통해 돈 번다'는 비뚤어진 시각도 받았을 법했다. 김 원장은 '수출'이라는 조악한 용어에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입양 재단의 진정성 문제를 떠나서 본인 스스로 아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 "고아 돌보고 싶어서요!"

김 원장이 소아과를 지원할 당시 면접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이현숙 전 한국여자의사회장이었다. 김 원장은 소아과 지원 이유로 "고아를 돌보고 싶다"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이유를 댔고, 그 이유가 어쩌면 삶의 이유로까지 확대되도록 살아왔다.

그는 이화의대 시절부터 기독의학생회 활동을 하며 보육원과 여맹원 등으로 일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다. 여름·겨울 방학이면 무의촌 진료봉사를 다녔다. 봉사활동에 얼마나 '심취'했던지 기독의학생회 15년 역사상 최초로 여자회장을 맡기도 했다.

"제 대학생활은 기독의학생회에서 '지졌다'고 보면 될 정도였어요. 물론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기도 했지만 의료 봉사활동이나 의료선교활동에 몸담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고 하면 표현이 좀 그럴까요? 여튼 전문의를 취득하고 나서도 특별히 이렇다 할 병원에 취직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의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을 원했던 것 같아요."

전문의를 취득한 뒤 모두들 취업을 통해 병원으로 진출하던 2월. 홀트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5월에 나갈건데 홀트의원에 올래? 2개월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두 달 기다렸다 갈게요."

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이 홀트의원과의 인연이었다.

95년 가족들과 함께 잠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홀트를 떠나면서 '다시 또 홀트에 오랴' 싶었다. 미국에 머무르면서도 홀트 아이들 생각이 간절했다. 조기발달클리닉이라든지 물리치료 등 홀트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배우고 익히는데 골몰했다. 무엇 때문도 아니었다. 저절로 관심이 그리로 향했고 2년 뒤 귀국한 뒤에도 '저절로' 홀트로 다시 되돌아갔다.

 

▶ 홀트의원의 아이들

합정동에 자리잡은 홀트의원은 눈에 띄는 붉은 벽돌 건물인 홀트재단 1층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건물 내부는 낡았지만 올망졸망한 아기 침대가 정겹다. 의료진은 김 원장을 포함해 소아과 의사가 2명·물리치료사와 임상병리사가 1명씩·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을 합쳐 모두 10명 정도다. 수백명의 아이들을 살펴보기에는 작은 가족이다.

홀트의원은 1982년 정식 인가를 받고 개원했다. 그 이전에는 별도의 병원을 개원하지 않고 자원봉사 형태로 여러 의사들이 입양아들을 돌봐왔다.

홀트의원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sick baby'와 'well baby'로 명명된 두 방은 홀트의원 초기부터 홀트의 운영방식이었고 방침이었다. 이름 그대로 'sick baby' 방에서는 아이들의 진료를, 'well baby' 방에서는 아이들의 조기평가를 통해 발달을 살펴보고 영양상태를 점검한다. 대체로 하루 30~40명씩 정기적으로 매달 한 번씩 건강을 체크해준다.

"하루 30~40명이면 매우 줄어든 숫자에요. 20여년 전만 해도 하루 150여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했거든요. 당시 입양아 수가 연간 3000명 가량에 달한데다(현재 1000명가량), 홀트재단 아이들 뿐 아니라 서울시내나 근교의 영아원·고아원에서 진료를 받으러 왔거든요."

홀트재단에 들어왔다 나가는 아이들은 1000명을 웃돌지만 상주하는 아이는 300~400여명 정도다. 그 아이들의 90% 정도가 미혼모의 아이들이고, 30% 정도가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다.

"건강에 문제 있는 아이들은 국내 입양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국내입양이 점차 늘어나고는 있지만 장애아를 입양하는 경우는 여전히 해외입양 뿐이거든요."

'수잔브링크'를 위하여 홀트의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소아과 의사 이상의 일을 요구한다. 사회복지사들은 의료적인 자문을 홀트의원장에게 구하는데, 특히 장애아를 인수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 김 원장마저도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장애아를 수용해야 마땅하지만 재단 입장에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아들을 돌보니까 오히려 편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오히려 부모가 없기 때문에 진료가 더 힘듭니다. 아이 상태를 일일이 알아보면서 아이의 입양까지 고려해야 하거든요. 또 입양되면 양부모들로부터 일일이 Medical Report를 보고받고 또 소견을 적어 보내줘야 하는데, 해외 양부모들인 경우 즉각즉각 의료적인 조언을 해줄 만큼 영어실력이 따라주지 않을 땐 조금 곤혹스러워요."(웃음)

국내외로 떠나는 수많은 '수잔 브링크'를 위해 소신을 실천하는 김 원장을 보면서, 아이들이 얻은 '제2의 어머니'는 양부모뿐 아니라 김 원장도 해당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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