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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11:38 (금)
그리운 선생님께

그리운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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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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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은경 원장(광주 중앙소아과의원)

일요일 밤, 저녁식사까지 느긋하게 마치고 야간버스에 올랐습니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인데다  토요일 저녁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토요일, 여의사회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살아 계셨더라면 틀림없이 함께 가셨을 것이다. 말은 안 했어도 모두들 알고 있었습니다.

저녁 행사에 참석하려면 저희 광주 사람들은 오후를 통째 투자해야만 합니다. 토요일 오후 진료를 하는 저 같은 개원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꽤 큰마음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기차여행은 기대보다 더 좋았습니다.


여의사회가 만들어진지 이제 50주년이라는데 어느 새 웬만한 의과대학에는 여학생이 반 수를 차지한답니다. 제 나이 아직 젊지만 생각해보니 전에는 진료실 문을 열다가 놀라면서  여자가 의사네? 하는 소리도 더러 들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시작하시고 가시밭길을 다듬어오신 선배님들의 노력과 능력에 존경을 드립니다. 

행사장에 오신 여의사분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멋졌습니다. 항상 아름다우셨던 선생님을 앞에 모시고 뒤에 살짝 숨어 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니 계시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까지 어색하게 얼굴을 들고 광주 대표석 중 한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친 밤 다음 날 연수강좌를 핑계 삼아 저는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그 밤, 여러 선생님들의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럴 때는 서울에서 먼 곳에 사는 것도 좋다 하겠습니다. 왔다갔다 할 수 없는 거리를 핑계로 자주 만나 뵐 수 없는 선배님들과 하룻밤을 함께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이 계셨으면 밤이 더욱 빛났을 텐데  벌써 추억 속에만 계시니 슬펐습니다. 


아이 낳고 한 달 만에 출근한 신생아실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 마다 다 내 아이 같아서 눈물이 났었다고, 가끔 고생인양 이야기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출산 다음날부터 진료했다는 선생님들이 계신가하면  전날 아이를 낳아 여관방에  뉘어놓은 채 다음날 전문의 시험 봤다는 선생님도 계시니 저는 어쩌면 좋습니까.  맨날 어깨가 아프다, 목이 뻐근하다 비명 지르는 저보다 아직까지 더 건강하시기조차 한 분들입니다.


제 기억 속에 선생님은 정말 멋지셨습니다. 레지던트 때 교수님과 함께 처음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랬고 암 진단을 받으신 뒤 몇 년 동안 보여주신 모습이 그러셨습니다.


화합 속에서 발전을 거듭하던 여의사회도 이제는 방향이 달라져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수가 많아진만큼  결속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으니까요.
후배들 수가 갑자기 불어나다보니 저도 갑자기 앞에 서 계신 선배님보다 뒤에 오는 후배 수가 더 많은 연배로 접어 들어가나 봅니다.


선생님!  언젠가 저도 후배들과 함께 밤을 보내는 날이 오면 훌륭하신 여러 선배님, 그리고 그리운 선생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내내 그 생각이었습니다.
여의사회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뒤 먼저 가신 고 김 혜경 선생님을 생각하며 몇 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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