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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이 한 일을 열 발가락까지 다 알게 하라

오른손이 한 일을 열 발가락까지 다 알게 하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1.0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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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행식 조치함 외과의원 원장

인천시 중구 답동에 위치한 선학무료진료소는 지난해 9월 15일 천주교 인천교구 외국인 노동자상담소 사무실 안에서 독립해 나와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상담과 진료를 계속 하고 있다. 선학무료진료소의 의사 대표로 인터뷰에 응한 조행식(48) 원장은 "사람들을 진실하게 돕고 있는 의사들을 통해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즉 의사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바뀌기를 희망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 조행식 원장

■ 의사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개선을 말하다

의사 10명, 치과의사 2명, 물리치료사 5명, 간호사 5명, 도우미 2명까지 인천 선학무료진료소는 다양한 구성원을 자랑한다. 이곳은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진료소에 모여 봉사활동을 해왔다. 종교와 무관하게 뜻 맞는 동료들끼리 모여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독립진료소로 자리를 잡고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조 원장은 선학동 성당에서 신축기금을 내고 남은 돈을 기증받아 독립이 가능했고 그래서 선학무료진료소가 되었다고 귀띔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함께 선학동 신자들 모두 복 받을 거란 말도 잊지 않았다.

"의약분업을 하면서부터였나, 까놓고 말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시선이 곱지만은 않잖아요. 물론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소린 아니지만, 그보다도 세상에 좋은 일 하는 의사들이 정말 많거든요."

나서기를 꺼리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편견을 덜어보고자 함이었다. 인식의 전환은 물론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고 싶었다.

"이기적이고 보수적이고 사회참여도 부족하다고들 하죠. 그렇지만 구석구석 찾아보면 봉사활동 하나씩은 하고 있을 텐데요. 밝히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어쨌든 의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대국민적인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료들이 하고 있는 일들, 그들의 사연 모두를 알리고 싶어요."

선학무료진료소에는 민주의사회 단체에 소속된 이도 있고 소개받은 이도 있다. 활동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합류한 이도 있다. 조 원장의 말에 의하면 그저 '인연'으로 뭉친 그들은 3년 남짓 매주 일요일을 할애해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왔다.

 

■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이유

외국인 노동자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왜 하필 외국인인가? 이에 대해 조 원장은 "사실상 불법으로 체류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조 원장은 남동공단 교회에서도 외국인 선교회 진료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몽골에서 7년 동안 봉사한 바 있는,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전희철 박사가 의사회에 공식 요청해 자원봉사자들을 모았고 그 모임의 간사를 맡았었다. 2002년 가을께로 기억된다.

"재미있어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 재미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보람도 긍지도 중요하지만, 봉사한다는 개념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일. 어울림으로써 재미를 느끼는 일이 그냥 좋은 건데 말이죠."

조 원장은 본래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체계화된 진료를 하고 싶어져 의과대학으로 전향한 케이스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의사 신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소록도 가보셨어요? 거긴 진짜 한번쯤 가봐야 하는 곳인데.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거죠."

신학을 하고 싶었던 조 원장은 소록도에서의 경험을 통해 의학을 알아야 구체적인 도움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늦깎이 의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능력이 안 돼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의술은 그저 밥벌이가 되었다"며 겸양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단속을 피하려다가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에요. 진료소는 어느 정도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셈이죠. 우리들은 단순히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문화를 알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어요."

안동하회마을에서도, 경복궁에서도, 안면도에서도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했다. 우리나라로 시집 온 외국인 여성들에게는 가사는 물론, 제사 등의 풍습을 알리고 쉼터를 마련해주고자 애썼다.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선을 긋는 것이거든요. 한계를 만들어 놓기만 할 뿐 외국인 노동자들이 왜 불법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겠는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요. 그들이 합법적으로 모든 절차를 밟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에 대한 생각도 없는 거죠.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말이죠."

한마디로 정책에 유동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일갈을 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조 원장은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나의 인력으로써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은 분명히 주지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정부가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을 덮으려 하는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양면성을 지적했다.

"김포 넘어가는 쪽에는 남동공단 등 꽤 많은 공장이 있어요. 안산과 김포는 대표적인 곳입니다. 김포 마성 같은 데에는 출장 진료도 많이 했었어요. 영세 공장들이 깔려 있는데, 정말 장관이더군요."

출장 진료를 자주 하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지역에 위치한 보건소에서는 왜 오려고 하느냐, 라고 되묻는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니 괘념치 말라는 것. 관공서 건물을 찾아 문턱을 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얘기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출장 진료를 포기하고야 만 일이 반복됐다.

"봉사하러 가는 의료팀을 오히려 귀찮아한다는 점은 개선의 여지가 큽니다. 그러나 지역 관공소에서 다 알아서 하는 일을 왜 또 하려고 하느냐고 되물으면 할 말 없죠. 그렇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출장 진료는 계속 병행할 생각입니다."

물론 아직 인력이나 자원 등 실제적이 여건들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력이 된다면 활동을 더 크고 넓게 해보고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봉사활동 단체들의 네트워크 형성 절실

"방글라데시 가족들에게 집을 지어주려면 33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진료소 식구들이 돈을 모으고는 있는데 아직은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잎으로도 한국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자 기금을 모으고 있지만 특별히 구체화된 것은 없다.  

"오른손이 한 일을 열 발가락까지 다 알게 하라는 재미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맘껏 알리려고요. 지난달에는 후원자들을 모시고 외국인 민속음식을 함께 하는 일일 호프를 진행했어요. 매년 두어 번씩 재미있는 행사로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선학무료진료소는 의료시설 자체로서도 체계적이고 규모 있는 시스템을 자랑한다. 인원이 더욱 충원되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만족스러운 활동을 해왔다고 자신한다.

재능을 혼자서 소유하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조 원장과 선학무료진료소 의료팀 모두는 이제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 원장은 마지막으로 봉사 활동 네트워크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잖아요. 각각의 단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 의협에는 그런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나요? 마음 따뜻해지는 일을 함께 하면 더욱 효율적일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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